총선 후 성장과 개혁의 우선 순위, 부실기업 매각시 노조 참여 허용, 재벌개혁 강도 등을 놓고 청와대와 정부 부처, 정당 간에 '엇박자'가 나타나면서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총선만 끝나면 경제 외적인 '안개'가 걷히면서 투자와 소비 심리가 되살아 날 것이라던 기대와 달리 오히려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이 충돌하면서 참여정부 출범 초기와 비슷한 혼선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5일 정부와 경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한 후 청와대는 '개혁'에, 열린우리당은 '중도 개혁' 또는 '실용주의'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으며, 재정경제부는 '성장 우선'의 기존 정책을 밀고 나간다는 방침이다. 경제정책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불확실한 가운데, 이 같은 노선차이가 계속 확대 재생산될 경우 혼선과 불안감만 증폭될 수 있다.
경제팀 수장인 이헌재(李憲宰)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총선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장위주의 정책기조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며 '선(先) 성장-후(後) 구조조정'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이정우(李廷雨) 대통령 정책기획위원장은 "개혁이 성장의 전제조건"이라며 "개혁과 분배 개선에 뿌리를 둔 성장만이 오래 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최근 우리당 워크숍에서도 "우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한 것은 국민들이 개혁을 계속해 달라고 주문한 것"이라고 말했다.
부실기업을 팔 때 노조의 참여를 허용해달라는 노동계의 주장에 청와대 개혁세력과 민주노동당이 가세하면서 노조의 입김이 다시 거세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지난달 29일 정책기획위원회 주관으로 관련 부처와 부실기업 매각시 노조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한 데 이어, 현재 매각 추진 중인 대우종합기계에 이 회사 노조로 구성된 공동대책위원회의 인수참여가 허용됐기 때문이다.
재경부는 "(노조로 인한) 매각 차질은 없으며,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되 차별도 특별대우도 없다"고 밝혔지만, 시장에선 정치논리의 개입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재경부의 '기업 기(氣) 살리기'가 진행되는 동안 한편에선 재벌 금융회사의 계열사 의결권 제한 등 재벌개혁이 다시 힘을 얻고 있는 것도 총선 결과가 가져온 기류 변화 중 하나이다.
재경부는 "외국인이 국내 유통주식수의 75%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사 의결권까지 제한하면, 외국자본의 국내기업 지배가 심각해질 것"이라며 신중론을 펴고 있지만 공정거래위원회와 우리당은 "금융사의 계열사 의결권은 원래 없는 게 맞다"며 재벌정책의 무게중심을 '개혁'에 둘 것임을 분명히 했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 정책의 '컨트롤 타워'가 없이 각개약진하면서 목소리가 큰 사람이 주도권을 휘두르는 형국이 다시 나타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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