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사관계의 뇌관으로 꼽혔던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를 둘러싼 재계와 노동계의 힘겨루기가 마침내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경제5단체가 5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재계 입장을 밝히는 공동성명서를 낸 것은 그 신호탄이다.
비정규직은 1주일∼2년 단위로 재계약하거나 하청업체 신분으로 원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 외환위기이후 늘어나기 시작해 지난해의 경우 전체 근로자의 55.4%인 784만명(한국노동사회연구소 집계)에 육박했지만, 임금이 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하는 등 차별대우를 받고 있어 올해 노사문제 최대 현안으로 등장한 상태이다.
초조한 재계
재계가 이날 "비정규직 문제가 경제 회생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면서 정면 대응에 나선 것은 최근 비정규직 논의가 재계에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로 비정규직 문제가 쟁점 법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은데다 최근 금호타이어 노사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합의하는 등 현장 분위기도 심상치 않아 미온적 대처보다는 '분명한 입장 표명'으로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 역시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 해소에 앞장서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4일 전경련과 민주노동당이 회동을 한 다음날인 5일 성명을 내놓은 것도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2월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퇴직근로자의 분신 자살사건을 계기로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올 임금단체협상의 핵심사항으로 내건 노동계는 6월을 집중 투쟁기간으로 선언하고 본격적인 투쟁에 나설 방침이어서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주진우 비정규사업실장은 경제5단체 성명에 대해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정규직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정규직 양보가 실마리?
노동계는 일단 비정규직의 임금을 정규직의 85% 수준(한국노총)에서 100% 수준(민주노총)까지 끌어올리는 한편, 상시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는 것 등을 투쟁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는 비정규직 고용은 단체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고 못박는 한편, 비정규직의 임금을 정규직의 85% 수준으로 올릴 경우 기업이 26조7,000억원(한국금융연구원)의 인건비 추가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경총 관계자는 "기존 정규직의 근로조건 양보 없이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에만 치중할 경우 치솟는 인건비 부담으로 기업 경쟁력 약화는 물론, 기존 비정규직 일자리마저 사라지는 등 엄청난 부작용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재계는 특히 성명에서 "정규직의 임금양보와 근로조건 완화 등이 가능할 경우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시정노력을 보일 용의가 있다"면서 노동계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기 위한 선결조건으로 정규직의 양보를 요구했다.
하지만 노동계가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올 임단협의 핵심과제로 내세웠지만 실제로 개별사업장에서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위해 기득권을 양보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아 협상 시작부터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안형영기자 ahn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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