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조요정의 신화는 구 소련의 음모?"'1.0' 전광판에 불이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 박수갈채를 보내던 관중석은 혼란에 빠졌다. 금발의 가녀린 14세 소녀도 울먹였다. "1.0이 아니라 10.0 만점입니다." 다급한 장내 방송이 이어진 후에야 체조경기장엔 환호가 터졌다. '9.99'가 표시의 한계였던 전광판도 신화 탄생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엔 올림픽역사에 한 획을 긋는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루마니아에서 날아온 153㎝, 39㎏의 가냘픈 '체조요정' 나디아 코마네치(42)가 여자체조경기에서 일곱 번이나 10점 만점을 기록하며 금메달 3개로 3관왕에 오른 것. 그 전까지 인간이 점수를 매기는 체조경기에서 만점은 감히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이었다.
그런데 28년이 지난 지금 아테네올림픽을 100일도 안 남겨둔 시점에 '음모론'이 제기됐다. 음모론의 핵심은 '점수 뻥튀기'다. 사연은 이렇다. 70년대 중반 국제체조연맹(FIG)은 구 소련 블록의 통제 아래 있었다. 몬트리올올림픽이 있기 1년 전(75년) 유럽선수권대회 모든 종목에서 코마네치가 당시 체조여왕으로 군림하던 구 소련의 루드밀라 투르체바를 철저하게 무너뜨리자 소련 체조계는 경악했다.
다급해진 소련 체조계가 급기야 묘책을 짜냈다. 개인종목은 버리되 단체전 승리는 놓칠 수 없다는 것. 시나리오가 만들어졌다. "소련 선수에게 공공연하게 점수를 더 얹어주거나 루마니아 소녀에게 불공평하게 낮은 점수를 줬다는 의혹을 사지 않고 소련이 단체전 우승을 따내는 방법은 소련권 심판들이 단결해 코마네치에게 '조금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이다."
올림픽에서 코마네치의 규정 종목인 이단평행봉 연기가 끝났을 때 사실 소련 선수들과 코마네치의 연기 사이에 확연히 드러난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소련 선수들에게 만점 가까운 점수를 준 이상 '(코마네치에게) 조금 더 높은 점수'를 주기로 한 담합대로, 또 코마네치의 연기를 지켜본 사람들의 공개적인 비난을 피하기 위해선 코마네치에게 10점 말고는 더 줄 점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음모론은 IOC 딕 파운드 전 부위원장이 곧 출간할 저서인 "올림픽의 내막(Inside the Olympics)"에 실려있다. 현재 세계반도핑기구(WADA) 수장인 그는 "당시 캐나다올림픽위원회(COA) 대표로 채점에 참가한 터라 나 역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중년이 된 코마네치가 파운드의 문제제기에 발끈하고 나섰다. 그녀는 "올림픽이 열리기 세달 전인 아메리칸컵에서도 여자체조 역사상 처음으로 두 번의 10점을 받은 바 있다"고 말했다.
'체조요정의 신화'에 기댄 상술인지, 진짜 구 소련의 가공할 음모의 소산인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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