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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희망의 정치 싹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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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희망의 정치 싹틔웠다

입력
2004.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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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총선은 3김 시대를 종식시키고 한국 민주주의의 새 지평을 열었다.3김 정치는 시민들의 피로 쟁취한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망가뜨렸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권부는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수사가 과분할 정도로 권력을 사유화하고 봉건화했다. 정부의 공식 직책을 전혀 갖지 않은 사인들이 막대한 돈을 끌어 모으고 국가 주요 공직 인사를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했다.

국회는 대통령과 권부의 이런 전횡을 견제할 능력과 의지가 전혀 없었다. 정치 보스에 맹종하는 정상배들의 집결체에 불과한 국회에서 민의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오직 정쟁과 야합만이 소용돌이쳤다.

정당은 국토를 분할 장악한 정치 보스들의 사당으로 전락했다. 보수 독점의 협소한 이념적 지평 위에서 이들은 지역주의를 끊임없이 재생산해서 시민사회에 쏟아 부었다.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지역적 선택 이외에 아무런 의미 있는 선택지를 제공받지 못했고 지역주의에 참담하게 매몰될 수밖에 없었다. 유권자들의 실망과 좌절은 지속적으로 낮아져 간 투표율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대의민주주의를 떠받치는 핵심 기제들이 3김 시대를 거치면서 이처럼 총체적으로 부실화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민주주의는 붕괴하지 않고 새로운 희망의 싹을 가꾸고 있다. 대체 무엇이 빈사 상태의 한국 민주주의를 소생시키고 있는가.

대의 기제가 허물어져 내리는 동안 한국 시민사회는 경이로울 정도로 참여민주주의 기제를 발전시키고 성숙시켰다. 시민들은 민주화의 과실을 보수적 정상배들이 가로채어서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를 참담하게 망가뜨리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 보아야만 했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이들의 분노와 좌절은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거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들이 선택한 것은 민주주의를 다른 방식으로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대의 기제가 부실화로 치닫는 동안 시민사회는 꾸준히 공적 영역과 특성을 확대하고 다양화했다. 그 결과 시민단체는 꾸준히 늘어났고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는 촘촘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갔다.

개인과 집단의 사적 이익보다는 공동체 전체의 공동선에 대한 시민적 관심은 국토를 가로지르는 삼보일배로 표출되기도 했고, 무엇이 우리 사회의 합당한 정의인가에 대한 시민적 의사는 도회의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집회로 과시되었다. 권위주의의 유산을 떨쳐버리지 못한 제도언론이 권력에 대한 공정한 비판 역할을 포기하고 기득권 보호와 유지에 급급할 때 전자매체를 활용한 새로운 공론의 장을 무서운 속도로 확산시킨 것도 시민사회였다. 실로 한국의 대중은 정치 엘리트들의 타락에 대항해서 스스로 공중(public)으로 변신하는 놀라운 기적을 연출해내었던 것이다.

부패와 정쟁으로 파산 상태에 이른 16대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함으로써 대의민주주의를 마침내 붕괴 직전의 상태까지 끌고 갔을 때 광장에서, 시민 네트워크를 통해서, 그리고 표의 심판을 통해서 이를 바로 잡은 것은 시민의 참여 기제였다.

이제 시민들은 대통령의 봉건적 전횡을 좌시하지 않으려 한다. 국회가 민의와 민생을 외면하는 것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지 않으려 한다. 이들은 정당들로 하여금 민주정당으로, 탈지역적 정책정당으로 거듭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의 대의민주주의는 이와 같은 시민적 참여와 압력에 의해 다시 소생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에 희망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시민의 노력으로 재건되고 있는 대의민주주의 기제, 그리고 민주화 이후 눈부시게 성장한 참여민주주의 기제를 두 기둥으로 삼아서 세계가 부러워 할 한국 민주주의를 구축할 과제가 이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뜻이다.

/김수진 이화여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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