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꽃이 피는 키 작은 풀들에 눈이 가더니 지난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잎이 나기 시작해 푸르러진 나무들에게 마음이 갑니다. 비가 갠 뒤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반짝이는 그 연한 잎새들의 사랑스러움은 봄의 숲 길을 산책해본 사람들만이 느끼는 행복입니다.그렇게 제각각 피고 지고 돋아나는 식물들을 보며 겨우내 묻어두었던 이름들을 기억 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꺼내 조용히 불러주는 일은 남다른 즐거움입니다. 만일 그 나무 혹은 풀들의 이름을 잘 몰랐다면 그들이 이토록 정다울 수 있을까요? 이 아름다운 봄 숲의 친구가 되고 싶으시다면 이름을 불러 주세요.
하지만 식물의 이름을 안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모처럼 알았던 식물 이름도 들었다가는 이내 잊어버린다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무작정 물어보고 잊고 하기를 반복하기보다는 왜 그런 이름이 됐나를 한번쯤 생각해보세요. 생강나무는 비비면 향긋한 생강냄새가 납니다. 작살나무는 나뭇가지가 모두 셋으로 갈라진 것이 작살처럼 생겼지요. 소태나무는 맛을 보면 소태처럼 쓰답니다. 노루귀라는 고운 풀은 새로 나오는 잎이 마치 솜털 보송보송한 어린 노루의 귀처럼 생겼답니다. 오리나무는요? '십리절반 오리나무'란 나무타령이 있듯이 이정표가 없던 시절 오리(五里)마다 이 나무를 심어 길을 가다 이 나무가 나오면 오리를 왔고 다시 나오면 십리를 왔구나 하고 생각했답니다. 마치 수수께끼를 풀 듯 왜 그런 이름이 붙었나를 한번 생각해보시면 재미납니다.
이름에는 이렇게 흔히 쓰는 우리말 말고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쓰는 학명(學名·scientific name)이 있습니다. 모든 공식적인 식물 이름을 논할 때는 우리 이름이 아닌 라틴어로 된 학명을 사용합니다. 학명은 왜 하필 어렵고 거의 쓰지 않게 된 라틴어냐구요? 바로 현재 쓰지 않은 언어라는 것이 그 첫째 이유인데, 현재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쓴다면 영구적으로 불변해야 할 학명이 변할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세계적으로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공식적인 언어로 라틴어를 쓰는 전통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그럴 확률이 많지는 않지만 새로운 식물을 발견하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혼자 이름 지어 부른다고 남들이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랍니다. 우리말 이름은 대부분 아주 예전부터 쓰던 이름을 학술적인 책에 기록해 공식화합니다. 학명은 국제적인 식물명 규약에 따라 제대로 발표해야 합니다. 그 식물의 특성에 따라 이름이 지어지며 그 끝에는 명명(命名)자의 이름이 붙으니 영원히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식물이름을 이야기하다 너무 멀리 왔습니다. 식물과 정말 가까워지고 싶으시다면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한 주일에 식물이름 하나씩 만이라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을 시도해보면 어떨까요.
이유미/국립수목원 연구관
ymiee99@foa.g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