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클래식에서 우승한 남태평양의 '흑진주' 비제이 싱은 올해만 3승(상금랭킹 1위)을 챙기며 타이거 우즈와 함께 세계 골프계를 양분하고 있다. 이들은 피부가 검다는 공통점이 있다.그러나 당초 유럽과 미국에서 스포츠는 대부분 '흰둥이 남자'의 전유물이었다. 특히 클럽 중심인 골프는 차별이 심각했다. 마스터스대회에 흑인이 진입하기까지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고 여자는 아직도 'No'다.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PGA 투어 멤버로 활약했던 찰리 시포드(82)가 얼마 전 인종 장벽을 허문 공로로 세계골프 명예의 전당 첫 흑인 회원으로 선정됐다. 상처가 깊은 영광이지만 때늦은 것이다.
시포드는 퍼블릭코스에서만 열려 상금은 적었지만 흑인 참가가 허용된 UGA(United Golf Association) 투어의 스타였다. 그는 빌 스필러, 테디 로즈, 피트 브라운, 리 엘더 등 흑인 선수와 함께 PGA투어 시드를 받기 위해 갖은 고초를 다 겪었다.
곡절 끝에 1952년 참가한 피닉스오픈에서 시포드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1번홀 컵 안에 인분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의 아내 로스(작고)가 인분을 치우고 홀 컵을 바꿀 때까지 기다린 뒤 경기를 계속했다. 그 해 샌디에이고 PGA투어에서 빌 스필러는 인종차별에 항의, 티오프하는 선수들 앞에 서서 경기를 가로막아 결국 전경기를 취소시켰다.
그 즈음 시포드가 프로야구에서 인종장벽을 깨트렸던 재키 로빈슨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끈질기게 도전하라. 하지만 엄청난 장애물과 마주칠 것이다"라는 로빈슨의 충고는 고비 때마다 힘이 됐다.
1960년 시포드는 PGA투어 시드를 받았고 1년 뒤에는 흑인의 공식 참가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그가 1961년 그레이터 그린스보로오픈에 참가했을 때는 전화로 살해 협박을 받았고 페어웨이에서는 백인 갤러리로부터 온갖 모욕을 당하면서 공동4위에 올랐다.
당시 상황을 그는 저서 '단지 경기만 할 수 있게 해달라(Just Let Me Play)'에서 "그린스보로오픈에서 우승하지 못했지만 만족스러웠다. 나는 처음으로 (백인의 아성인 미국의) 남부지역에서 벌어진 대회에서 살해 협박의 공포와 모욕을 이겨나갔다"고 회고했다.
시포드는 1967년 그레이터 하트포드오픈, 2년 뒤 랜초파크 LA오픈에서 우승하면서 타이거 우즈, 비제이 싱이라는 걸출한 흑인스타 탄생에 밑거름이 됐다.
/조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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