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문화인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공연.'지난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있었던 머스 커닝햄 무용단 내한공연의 기획사가 내세운 선전 문구다. 이 정도는 봐야 문화인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존심인지 허영심인지를 부추겼다. 그러나 머스 커닝햄이 아무리 훌륭한 예술가라 해도 반드시 그걸 봐야 문화인 자격이 있다고 하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보고 말고는 취향과 관심에 따른 선택일 뿐이다.
놓치면 큰일 날 것같이 혹은 체면을 구길 것처럼 은근히 협박성 강요를 일삼는 이런 식의 선전은 공연 동네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외국에서 오는 주요 연주자들의 무대를 알리는 홍보물에서 흔해 빠진 표현이 '천재'요 '거장'이고, '금세기 최고' 이니 '세계 최정상'이니 하는 수식어도 자주 본다. 공연마다 '감동의 극치'를 예고하고, '정통 예술의 정수'를 장담한다.
물론 천재도 있고, 거장도 있고, 평생 잊지 못할 무대도 있다. 하지만 이런 표현이 하도 남발되다 보니 정작 공연을 보기도 전에 헛배가 부르고 신물이 날 지경이다. 그런 공연일수록 입장권 값도 비싸서 지갑 얇은 애호가로서는 그림의 떡이다. 문화인이란 유명 예술가의 호화스런 공연을 돈걱정 없이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가 보다.
이런 광대놀음과 겉치레에 지치는 건 진정한 애호가 뿐만이 아니다. 무대 위 주인공들도 간혹 그 허망함에 절망하는 모양이다. 매우 독특한 연주와 기행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그러했다. 1961년, 연주자로서 정상에 이른 32세의 글렌 굴드는 무대를 떠나버렸다. 이후 죽을 때까지 그는 대중 앞에서 연주하지 않고 녹음 스튜디오와 방송국에 처박혔다. 공개 무대를 거부한 그의 생각은 이러했다. "음악은 청중을, 또 연주자를 명상으로 인도해야 한다. 하지만 2,999명의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명상에 잠길 수는 없는 법이다."
굴드처럼 유난을 떨 필요는 없겠지만, 참된 음악을 위해 무대를 버린 그의 진정이 가끔 그립다. 허영의 거품이 둥둥 떠다니는 공연장에서 우화 속 개구리를 떠올린다. 배에 바람을 넣어 부풀리기 자랑을 하던 개구리는 결국 배가 터져 죽고 말았다.
/오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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