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5월6일 여성 저널리스트 아그네스 스메들리가 영국 옥스퍼드에서 작고했다. 56세였다. 본인이 생전에 바라던 대로 그녀의 유해는 중국 베이징(北京) 근교의 혁명 유공자 묘역에 묻혔다. 스메들리는 미국인으로 태어났고 죽을 때까지 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더 큰 소속감을 지닌 나라는 중국이었던 듯하다. 그녀는 1928년부터 1941년까지 독일 신문 '프랑크푸르터 차이퉁'과 영국 신문 '맨체스터 가디언'의 특파원으로 중국 대륙을 누비며 20세기의 가장 기다란 혁명을 기록했다.스메들리는 그 시기에 주더(朱德), 마오쩌둥(毛澤東) 같은 중국 혁명 지도자들과 친분을 맺었고, 팔로군(八路軍) 병사들이 가장 존경하는 외국인 여성이 되었다. 1941년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저술 활동을 통해 중국 혁명의 대의를 외쳤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을 휩쓴 '빨갱이 사냥' 회오리 속에서, 스메들리는 결국 영국으로 망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시아 혁명에 대한 스메들리의 관심은 그녀의 어려웠던 성장기와도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미주리주에서 빈농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독학을 한 뒤 뉴욕의 한 잡지사 기자로 일하며 야간 대학에서 향학열을 달랬고, 그 즈음 인도의 독립 운동을 지원했다는 혐의로 석 달간 옥살이를 했다. 이 때의 감옥 체험을 바탕으로 스메들리의 첫 책 '교도소의 동료들'(1919)이 나왔다. 산아 제한 운동으로 유명한 마거릿 생어가 스메들리의 석방 운동을 벌인 것이 인연이 돼 두 여성은 친교를 맺게 됐고, 스메들리도 그 뒤 미국과 유럽의 산아 제한 운동에 발을 담갔다. '교도소의 동료들'과 자전 소설 '대지의 딸'(1929)을 제외하면 스메들리의 저서 대부분은 중국과 관련돼 있다. 이 미국의 딸은 중국의 며느리이기도 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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