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상자와 엄청난 피해를 낸 북한 용천역 열차 폭발사고가 발생한 것은 4월 22일 오후 1시께. 우리 언론은 취재의 손길이 닿지 않는 북한 내 사고를 신속하고 집중적으로 보도했다.YTN이 당일 오후 10시께 간략하게 사고 소식을 전했고, 다음날 조간 신문의 보도가 뒤따랐다.
그러나 공신력 있는 정보를 얻기는 어려웠다. 다음 날에는 폭발사고의 원인과 피해규모 등에 대한 추측 보도가 난무했다. 한국일보 등 주요 신문이 23일자에서 3,000명 사상설을 전했으며, 심지어는 3,000명이 사망했다는 의혹까지 소개됐고(조선일보 24일자), 사고원인에 대해서도 열차 충돌설, 가스탱크 폭발설, 반(反) 김정일 세력의 의도적인 테러설 등이 등장했다.
영국 BBC는 사고현장 사진을 웹사이트에 띄웠다가 이라크 사진으로 밝혀지자 삭제하기도 했다.
언론은 참사 상황보도와 더불어 북한동포 지원에도 참여했다. 신문들은 24일자 사설에서 대북지원의 필요성에 대해 한 목소리를 냈다. 동포애를 강조하며 의약품과 구호 식량을 보내 부상자를 치료하고, 이재민을 돕는 일에 나설 것을 역설했다. 26일부터는 신문협회와 각 언론사가 용천 피해자 돕기 성금모금에 나섰고 연일 기탁자 명단을 소개했다.
용천 참사에 대한 언론의 모습은 초기의 부정확한 추측 보도와, 이후의 적극적으로 전개된 재난구조 보도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초기의 오보는 우리 언론이 직접적인 정보를 확보하기 곤란한 북한 뉴스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충분한 근거없이 사고 규모를 부풀리거나, 북한 내 테러의혹설 등을 추측 보도한 것에 대해서는 자성이 요구된다. '김일성 사망설' '성혜림 망명설' 등 일부 신문의 오보가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고, 남북관계 화해에 역행했던 과거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언론의 사회책임론(Social Responsibility Theory)'에 따르면 재난 발생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신문과 방송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봉사할 것을 요구 받는다. 그런 점에서 용천 참사에 대한 언론의 적극적인 구조 보도는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긍정적 측면을 보여준다. 또 남북 신뢰회복과 평화 분위기 조성에 기여한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만 한가지, 그 동안 대북지원정책을 강하게 비판한 일부 보수 신문까지 '북한 동포' 돕기에 앞장 선 것이 인도주의를 가장한 '상업주의의 교묘한 가면극'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폐허로 변한 용천역 주변의 참혹한 현장과 얼굴이 검게 그을린 채 병상에 누워있는 어린이들을 보며 세계 어느 나라도 이념을 내세워 외면하지 않고, 앞 다퉈 위로를 전하고 구호품을 보내고 있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여전히 냉전시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대북지원을 '퍼주기 정책'이라든지, '집단적 정신병'이라고 비난한다면 용천 사고현장에서 수레를 끌고 가는 소도 웃을 일이 아니겠는가.
이진로/영산대 매스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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