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브레머 이라크 미군정 최고행정관이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를 알고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미국의 이라크 정책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한층 더 높아지고 있다. 또 리처드 마이어스 미 합참의장이 CBS 방송에 보도 연기를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언론 통제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미군의 나자프·팔루자 공세에 항의, 사임한 압델 바세트 터키 전 이라크 인권부 장관은 3일 AFP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11월 교도소 내 인권침해 사실을 브레머 최고행정관에게 얘기했지만 그는 듣기만 하고 대꾸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터키 전 장관은 "나는 그에게 공안사범과의 면담 허용을 요청했으나 거절 당했다"며 "당시 내가 만난 몇몇 수감자들은 이틀 동안 의자에 앉은 채 구타 당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브레머 최고행정관이 포로 학대 사실을 알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확산될 경우 미군정 당국에 대한 이라크인의 신뢰는 더욱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포로 학대 사실을 처음 보도한 CBS 방송의 '60분' 책임 프로듀서인 제프 페이저는 이날 마이어스 의장의 요청으로 2주간이나 방영을 늦췄다가 시사잡지 뉴요커가 이 사건을 보도할 것을 알고 지난달 28일 내보냈다고 말했다.
페이저는 "마이어스 의장이 미국인 포로들의 안전 문제와 팔루자 사태를 둘러싼 긴장을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연기 요청을 받고 기분이 고약했지만 상황이 특수한 것이어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건 조사에 나선 미군 당국은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의 관리 책임을 맡고 있던 6명의 장교와 하사관을 중징계하고 다른 1명에게는 훈계 조치를 내렸다고 미 언론들이 보도했다. 미 언론은 이들이 학대에 직접 관여한 혐의로 징계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이번 징계로 불명예 제대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전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에게 전화로 수치스러운 행위에 책임 있는 관련자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지시했다고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이 밝혔다.
워싱턴포스트는 "2달 전 교도소 관리감독 경험이 있는 25명의 헌병이 현지에 급파됐다"며 "이 결정은 수감자 학대가 소수의 병사나 장교의 범위를 벗어나 광범위하게 이뤄진 것일 수 있다는 군 수뇌부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시 정부의 진상조사와 관련자 처벌 약속에도 미국 안팎의 여론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미 상원 군사위원회는 4일 미 국방부 고위당국자들을 출석시켜 이라크인 수감자 학대 파문을 추궁할 예정이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4일 이라크 바그다드의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등에서 수감자들을 상대로 자행된 가혹행위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법원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앤터니 코즈먼 연구원은 "이전보다 많은 아랍인들이 미군 주도의 연합군을 '정당한' 적으로 여기게 될 것"이라며 "관련자들을 군법재판으로 처벌하지 않는다면 아랍인들에게는 사건의 은폐로 인식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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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軍, 여성 수감자 性학대"/LA타임스 軍보고서 보도
미군이 이라크인 수감자들에게 자행한 가혹 행위의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LA타임스는 3일 미군이 3월 작성한 비밀 조사보고서를 인용, 수감자 간 강간 강요 등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추가 잔혹 행위를 폭로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미군들은 이라크인 수감자를 협박해 15세의 동료 수감자를 강간하게 한 뒤 몸에 '강간범'이라고 써서 사진을 찍었다. 한 미군 헌병은 여성 수감자와 성관계를 갖기도 했다. 보고서엔 강간이란 말은 없지만 위협에 의한 성관계로 추정된다. 이밖에 여성 수감자들의 나체 촬영을 했으며, 남자 수감자들을 강제로 집단 수음하게 하거나 여자 속옷을 입혀 희롱했다. 미 여군의 사진 배경용으로 남자 수감자의 목에 개 줄을 묶기도 했다. 이미 공개된 전기처형 위협 사진에서도 새 사실들이 밝혀졌다. 이 수감자의 머리엔 모래주머니를 얹혔고, 손 발 외에 성기에까지 전기선이 연결됐다.
안토니오 타구바 미군 소장은 비밀보고서에서 "수감자의 60%가 사회에 위협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안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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