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바그다드 서쪽 외곽의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는 사담 후세인 통치 시절 정적들을 가둬놓고 고문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 교도소의 존재와 그곳에서 벌어졌던 갖은 악행에 대한 증언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더할 나위 없는 명분을 보탰다.후세인의 하수인들에 의한 고문 장면을 전한 CNN 보도의 잔상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또 다른 '더러운 모습'이 우리를 역겹게 하고 있다. 화학물질 쏟아붓기, 빗자루 손잡이 항문 집어넣기, 군용견 풀어 협박하기, 자위행위 강요. 가학의 실행자가 후세인의 하수인에서 미군으로, 그 대상이 반 후세인 세력에서 대미(對美)저항세력으로 바뀌었을 뿐 학대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포로의 수치심을 자극해 필요한 정보를 뽑아내려는 이 더러운 착상들이 '해방군'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정말 믿어야 하는 것일까. "이라크에 민주주의와 인권을 꽃피우겠다는 미국의 약속이 바로 이거냐." 이라크인들의 분노에 찬 반문이 쏟아지고 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극소수 미군의 일탈 행위"이다.
1년 전 알 자지라 방송이 후세인군에 붙잡힌 미군 포로를 방영했을 때 부시 정부의 관리들은 한 목소리로 제네바 협약 위반을 성토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미군 포로를 잘못 대우하는 이라크인들은 전범으로 처리될 것이라는 부시 대통령의 경고는 아직도 생생하다.
이번 사건에 미군 정보장교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내부 고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하급 실무자를 희생양 삼아 무마하려 들거나 이라크 포로 다르고 미군 포로 다른 이중의 잣대를 들이 댈 경우 세계는 다시 한번 미국의 오만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김승일 워싱턴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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