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혐의로 당수가 처형된 진보당 이후 50여 년 만에 진보세력이 4·15 총선을 통해 국회에 대거 진출했다. 그런데 무엇이 진보인가? 인류사회는 어느 방향으로 진보하는가?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앞쪽인가?이를테면 헤겔은 인간의 자유의식이 사회 속에 침투되는 과정을 역사의 진보라 했다. 마르크스는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조건이 되는 사회의 실현을 향한 역사 변천을 진보라 했다. 요컨대 인류 역사는 궁극적으로 열린 자유사회의 실현을 염원하여 진보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장벽에 가로 막혀 우왕좌왕하던 공산사회들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에는 한결같이 자유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이번 용천역 폭발 사고를 대하는 우리 국민의 태도를 보면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이념의 색깔은 바래버렸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전개되는 획일적 황색에서 과연 진보의 낌새나마 느낄 수 있나.
지금 세계적 진보의 화두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흔히 우리가 가진 것을 남겨서 후손에게 물려주자고 하지만 이는 지속가능한 방법이 아니다. 일정한 것은 아무리 절약해도 언젠가는 고갈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못 가진 자에게 나눠주는 것 역시 지속가능한 방법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제로섬 게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말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룩하려면 선조로부터 받은 것에다가 우리가 더 보태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쓰면 쓸수록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것이 있다. 다름 아닌 창의적 지식이다. 인간의 창의성은 이념의 갈등이나 사상의 장벽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 열린 자유사회라야 비로소 최대한 발휘된다.
지난 해 6월 9일 일본 중의원 의장 주최 간담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말했다. "한국에서도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히 부연하자면 지휘 통제의 간섭사회가 아니라 열린 자유사회라야 비로소 진보하고 발전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우리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돼 있지만 일본 헌법 제19조는 '사상 및 양심의 자유, 이를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돼 있다. 그들과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 격차는 우리 사회의 갈등의 근원인 사상의 장벽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이 사상의 장벽이야말로 진보세력이 허물어야 할 개혁 대상이라 한다면 시기상조라 할 것인가.
/조영일 연세대 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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