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간판기업 삼성전자는 지난해 로열티로만 1조2,000억원을 지불했다. 지난해 삼성전자 순이익의 약 20%에 해당하는 돈이며, 웬만한 중견기업의 연간 매출액보다도 많은 액수다. 미국 특허상표국에 출원된 특허만 1,313건에 달한다는 삼성전자가 이 정도라면, 다른 기업들의 로열티 부담은 말할 것도 없다.로열티를 포함, 지적 재산권으로 해외 유출되는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4분기중 특허·상표·저작·번역사용료와 컴퓨터 첨단기술개발 기술 사용대가 등으로 지급한 돈은 11억5,630만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7%나 늘어났다. 분기 로열티 지급액으론 사상 최대규모다. 반면 해외로부터 받은 지적재산료 수입은 지급액의 38%인 4억4,430만달러에 불과했다. '보이지 않는 상품'인 지적재산에서 1·4분기에만 7억달러 이상의 적자를 본 것이다.
앞으로 벌고 뒤로 샌다
기술사용이 많은 국내 전자업계는 이익이 날수록 로열티도 함께 늘어나는 사업구조다. LG전자는 지난해 순이익 6,628억원의 절반 가까운 3,603억원을 로열티 사용료로 지출했다. 2001년 2,210억원, 2002년 2,393억원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LG필립스LCD도 매출 증가와 비례해 2년만에 로열티 지출이 5배(2001년 64억→2003년 389억원)나 늘어났다.
팬택 계열의 경우 지난해 417억원의 순이익을 냈지만 로열티 사용료는 순이익의 3배 가까운 1,200억원에 이른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원천기술 부재로 크로스 라이선싱(기술교환) 등 로열티 지급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중소기업은 부담이 더욱 크다"고 말했다.
원천기술 개발에 힘써야
특허료 계약은 비공개가 원칙이기 때문에 제품별, 기술별 로열티 지급실태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휴대전화 등 주력품목일수록 원천기술 보유율이 낮아, 로열티 지급액은 상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휴대폰의 경우 국내 업체들은 수출판매가의 5.75%, 내수판매가의 5.25%를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원천기술업체인 퀄컴에게 안겨주고 있다.
그 동안 국내 전자업계가 내세운 것은 '부가가치 창출론'. 기술 없는 후발주자로선 수년, 수십년이 걸리는 원천기술 개발에 매달리느니 로열티를 주더라도 선진기술을 이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게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기술전쟁 시대에 원천기술 개발을 뒤로 한 채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사고는 더 이상 타당치 않다.
원천·선진기술 보유업체가 언제라도 기술을 무기로 후발주자의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SDI가 엄청난 투자 끝에 지난해부터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에서 이익을 내기 시작하자 후지쓰가 로열티 제공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LG경제연구원 조준일 연구위원은 "국내 전자업계의 비교우위점이었던 생산공정이나 상품화 부문은 더 이상 경쟁력의 원천이 되기 힘들다"며 "사상 최대실적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내실을 다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박천호기자 tot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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