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대표회담은 '일하는 국회'를 위한 큰 틀에 합의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양당 대표는 이날 "대립과 갈등의 구시대 정치를 청산하고 17대 국회를 '민생국회' '경제회생 국회'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한다"는 '3대 원칙'을 천명하고, 이를 위한 '5대 과제'를 제시함으로써 대화와 상생, 민생우선 정치에 시동을 걸었다.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합의내용을 과거 대표회담에서 통상적으로 쓰인 '합의문' 대신 구속력을 풍기는 '협약'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해 강한 실천의지를 드러냈다.
향후 정치일정도 이번 합의가 현실화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17대 총선이 막 끝난 데다 지방선거는 2년이나 남았고, 17대 대선은 3년7개월 후에나 실시된다. 2년 이상 큰 선거가 없다는 점은 여야가 극한 대결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양당 대표가 천명한 3대 원칙은 17대 총선에서 확인된 민의의 반영이다. "경제를 회생시켜라" "부정부패와 절연하라" "국회에서 싸우지 말라"는 게 국민의 메시지였다. 어떤 이념과 노선도 이를 외면하고서는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게 양당 대표의 일치된 인식인 셈이다.
양당은 특히 5대 과제에서 국회에 경제 살리기를 위한 규제개혁특위와 일자리창출 특위를 설치키로 해 이번 합의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17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재래시장 육성 특별법을 제정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개혁 의지도 눈 여겨 볼만 하다. 항상 총선을 목전에 두고 시간에 쫓기며 당리당략에 따라 졸속 처리된 선거법을 비롯, 정치자금법 정당법 개정 등을 위한 특위가 만들어져 정치개혁 논의가 일상화할 것으로 보인다. 또 국회에서 날치기와 실력저지를 하지 않기로 함으로써 원칙에 입각한 정상적 국회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회 미래위원회의 신설도 처음 있는 일로, 미래 성장산업을 뒷받침할 교육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것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념과 무관할 수 없는 대북 문제의 경우 전에 비해 여야의 거리가 많이 좁혀졌다고는 하나, 이날 양당 대표의 논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야 갈등을 부를 소지가 여전히 적지 않다. 또 내달 중 예상되는 개각에서 최근 하마평대로 김혁규 전경남지사가 차기 총리에 발탁될 경우 한나라당의 반발로 정쟁이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대회전이 불가피한 6·5 부산시장 및 경남지사 보궐선거 역시 이번 합의의 실천에 암운을 드리울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대북관계 문구 "자유민주주의…" 삽입 설전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3일 처음으로 회담 테이블에 마주 앉아 정치개혁과 민생·경제 회생 방안 등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과거 영수회담에 비해 추상적인 대목이 없고, 매우 실무적이고도 구체적인 게 특징이다. 의견이 맞고 어긋나는 부분의 구분도 명확했다. 다음은 주요 발언 내용.
정동영 의장=16대 국회에서 정치개혁안이 졸속으로 처리됐다. 17대 국회 초반에 정비해야 한다. 특히 지구당 폐지 후 어떻게 할 지 불분명하다.
박근혜 대표=시간에 쫓기지 말고 충분히 검토해 그렇게 하도록 하자. 또 전원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국회 윤리위원회와 선거구획정위원회도 뒀으면 좋겠다.
정=지난해 국회 윤리위에 13명의 의원이 제소됐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윤리위는 외부 인사들이 참여하는 수준으로 하자. 그보다 한나라당이 불법자금 국고 환수법 제정에 합의해달라.
박=과거 대선자금 보다 앞으로의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16대 대선자금은 불법자금 국고 환수대상에서 제외하자. 우리는 이미 600억 상당의 천안 연수원을 매각해 국고에 헌납키로 했다.
정=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모래주머니라면 이젠 풀어야 한다. 기업에 투자 마인드를 심어주자. 규제개혁위원회가 기업인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박=맞다. 국내에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투자가 활성화할 수 있도록 국회가 앞장서야 한다. 국제 규범에 맞는 노사문화도 필요하다.
정=협약문 초안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원칙과 규칙을 확립하고 이를 제도화한다'는 구적이 있는 데, 마치 북한 체제에 대해 간섭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다. 북한이 '흡수통합'으로 오해할 소지도 있다.
박=이것은 철학의 문제다. 그래야 우리가 북한에 더 많이 주더라도 국민들이 불안감을 갖지 않는다. 절충점으로 '제도화' 문구만 빼도록 하자.
정=북한 용천 사태와 관련, 여야의 초당적 지원을 합의문에 넣었으면 좋겠다.
박=굳이 그런 지엽적인 문제까지 넣을 필요가 있겠나.
/정리=박정철기자 parkjc@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경제 등 각론 이견… 150여분 기싸움
3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여야 대표회담은 2시간30여분동안 시종 팽팽하고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양당 대표는 막판까지 협약 문구 하나하나를 놓고 줄다리기를 거듭하는 등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양당 정책위의장과 비서실장, 대변인 등이 배석한 가운데 시작된 대표회담에서 정동영 의장과 박근혜 대표는 '상생의 정치'와 '경제살리기' 총론에선 한 목소리를 냈으나, 경제 해법을 놓고선 기 싸움을 벌였다. 정 의장은 먼저 "17대 국회는 경제살리기에 역점을 둬야 한다"며 "특히 여야가 재래시장특별법 제정에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박 대표는 "재래시장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경기가 살아나야 한다"며 "일자리 창출과 소비 인구가 늘어나려면 기업들의 투자 심리가 살아나야 한다"고 맞섰다. 박 대표는 본회담에서도 "기업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정부와 여권내 반기업 정서를 없애야 한다"고 몰아붙였다.
남북관계를 놓고도 양측간에 30여분 넘게 밀고 당기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정 의장은 협약문 중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칙',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원칙과 규칙을 확립하고 이를 제도화'라는 내용을 지적, " 당연한 것을 협약문에 포함시키면 북한에 제도 채택을 강요하는 것처럼 비쳐져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며 삭제를 주문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철학의 문제"라며 반대, 결국 '제도화'문구만 빼기로 절충했다. 정 의장은 "남북관계기본발전법 제정 및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도 이 자리에서 논의하자"고 제의했으나, 박 대표는 "대표회담에서 그런 문제를 직접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차단막을 쳤다.
대표 회담 말미에는 탄핵 문제도 거론됐다. 정 의장은 "3원칙 5대 핵심과제가 실천되기 위해선 노무현 대통령이 이른 시일내에 복귀해야 한다"며 "탄핵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한 만큼 토론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고 은근히 박 대표의 속내를 떠봤다. 그러자 박 대표 등이 일제히 "이미 끝난 얘기가 아니냐"고 일축, 더 이상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앞서 2일 밤 늦게까지 진행된 막후 협상에선 대표회담 결과문 제목을 놓고 우리당은 '협약', 한나라당은 '합의'를 주장해 진통을 겪다가 결국 대표회담 결과에 구속력을 부여한다는 차원에서 '협약'으로 결정했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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