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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 이발사 송강호

입력
2004.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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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37) 정도 되는 배우는 사실 수식어가 거추장스럽다. '관객 동원력 1위'라거나, '변신의 귀재'라거나, 다 부질없다. "배, 배, 배신이야"('넘버3')와 "밥은 먹고 다니냐?"('살인의 추억')면 설명 끝, 상황 종료다. 그는 맡은 작품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고 관객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5일 개봉하는 '효자동 이발사'도 마찬가지다.이번에는 대통령 전속 이발사 성한모 역이다. 극중 정황으로 짚어보면 1968년부터 79년까지 12년 동안 박정희 대통령(조영진)을 가까이서 '모셨다'. 성한모는 이런 사람이다. 그를 아낀 박 대통령이 "난, 자네가 참 좋아.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거든. 그런데 12년이라고? 자네 참 오래 했구만"이라고 말한다. 입조심, 행동조심을 신조로 삼는 그가 자기 딴에는 장단을 맞춘다며 답한다. "각하도 오래 하셨습니다."

서울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강호는 이 영화가 "가난했고 암울했던 1960∼70년대를 살아간 우리들의 아버지 이야기"라고 했다. "대통령 전속 이발사라는 것도 결국 그 시대를 관통한 소시민일 뿐"이라는 것. 조용조용하게 맡은 역할 설명을 해주는 그에게선 이미 "여기가 콩밭이야, 강간의 왕국이야?"라고 외치던 '살인의 추억'의 형사 이미지는 오간 데 없다.

"10·26에 얽힌 추억이 있어요. 당시 집에 TV는 없고 라디오만 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 각하가 어제 밤 서거하셨다'는 겁니다. '서거'라는 말 뜻을 몰랐던 중1짜리 저는 그냥 대통령이 굉장히 아픈 모양이구나, 이런 식으로 넘겨짚었죠. 그러고는 학교를 가는데 옆집 중3짜리 누나가 '대통령이 돌아가셨대'라며 울고 뛰어가는 겁니다. 어린 마음에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죠."

"그게 어쩌면 당시 대중의 정서였고, '효자동 이발사'도 그런 복고적 정서에 기댄 것 아니냐"고 묻자 송강호는 더욱 진지해졌다. "제작사 대표도 걱정을 많이 합니다. 이 영화는 박정희 대통령을 미화한 것도, 비난코자 한 것도 아닌데, 자칫하면 양쪽에서 동시에 욕 먹게 생겼다고요. 제가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갖고 역사를 재단한 게 아니라, 단지 그 시대를 살아간 아버지의 심정을 드러냈기 때문이죠. 역사를 재단하는 건 언제나 관객의 몫인 거죠."

사실 '효자동 이발사'의 성한모는 핵심권력 바로 옆에 자리한 이발사라기보다는 열 살 난 아들 낙안(이재응)을 둔 아버지의 이미지가 강하다. 엉뚱한 간첩 혐의를 받고 고문 끝에 두 다리를 못쓰게 된 아들. 그런 아들을 들쳐 업고 산속 의원을 찾아 떠나는, 등이 아주 넓고 푸근한 아버지다. "제 아들이 아홉 살입니다. 만약 그놈이 이런 처지라면 제 심정은 어땠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연기 몰입에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는 "올해 68세인 아버지도 힘들게 한 시대를 살아온 평범한 소시민"이라고도 말했다.

얘기가 좀 우울해졌기 때문일까. 갑자기 쥐 잡는 얘기를 꺼낸다. "극중에서 성한모 마누라(문소리)가 베개를 냅다 천장으로 던져 쥐를 쫓는 장면이 나오죠? 제가 어렸을 때도 쥐가 엄청 많았어요. 이 쥐란 놈이 이래요. 처음에는 장롱 위 천장만 살금살금 다니다가, 사람들이 별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으면 아예 천장 가운데를 활보를 하고 다니는 겁니다. 아주 간이 부은 놈이에요."

이런 추억담까지 다정다감하게 들려주는 걸 보면 송강호는 영락없는 성한모다. 친구 같고 삼촌 같고 아버지 같다. "집에서 쉴 때면 이렇게 입을 약간 벌리고 멍하니 소파에만 앉아 있는다"며 흉내를 내고 웃긴다. 그러나 "지금의 송강호를 있게 한 그 '8할'이 뭐냐"고 묻자 이내 정색을 한다. "영화 데뷔 전 6년 동안 대학로 연극판을 전전했던 경험이 나를 배우로 만들었다. 그때의 실패와 영광과 좌절이 나를 숙련시켰다. 관객동원력 1위? 한 순간의 평가다. 나는 매 작품 새롭게 태어나려 노력할 뿐이다." 송강호는 그래서 믿음직한 배우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 "효자동 이발사"는

올해 초부터 각종 네티즌 투표에서 '상반기 기대작 1위'에 오른 영화가 바로 임찬상 감독의 '효자동 이발사'(사진)다. 대통령 전속 이발사의 삶이라는 소재, 송강호와 문소리라는 출중한 연기력의 두 배우, 여기에 1960∼70년대 복고 취향의 관심까지 맞물리면서 '효자동 이발사'는 어느새 영화 팬들에게 친숙한 단어가 됐다. 그리고 그 기대는 헛되지 않았다.

주인공은 성한모(송강호). 극중에서 본인이 설명한 것처럼 "두부 한 모 두 모 할 때의 한모"다. 그는 이발사다. 자격증은 어떻게 땄는지 모르겠지만, 여자 면도사인 김민자(문소리)의 엉덩이를 힐끔 쳐다보는 걸로 봐서는 그리 성실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그가 박정희 대통령(조영진)의 전속 이발사가 됐다. 어떻게? 청와대 바로 옆동네인 효자동 이발사였으니까.

그러나 열 살짜리 아들 낙안(이재응)이 엉뚱하게 간첩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고 결국 두 다리를 못쓰게 되면서 성한모의 삶은 급변한다. "야! 니네들,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청와대 이발사야. 이 새끼들아! 이 나쁜 놈들아…" 효자동 길거리에 나가 목놓아 울부짖는 성한모는 결국 암울한 시대를 살아간 소심한 소시민이었을 뿐이다.

영화는 웃기면서 감동적이다. 5·16쿠데타 때 청와대로 진격하는 탱크 운전병이 반팔 러닝 차림으로 이발소 앞에 앉아있던 성한모에게 묻는다. "야, 여기 청와대가 어디야?" "저기인데요." 탱크가 지나가고 나서야 한마디 하는 성한모. "자식이,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한편으로 한겨울 산 속 한의사를 찾아가는 길, 아들 낙안을 등에 업고 냇물을 건너는 성한모는 한마디로 성자(聖者)를 닮은 아버지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면 왜 은근히 화가 나는 걸까. 3·15부정선거, 4·19혁명, 5·16쿠데타, 10·26사태라는 격변의 현장을 재치있게 되살려낸 감독의 솜씨도 놀라웠는데, 왜 씁쓸해지는 걸까. 영화는 '각하의 한마디가 곧 법이던' 유신시대를 통렬히 비판했지만, 결국 그 '박정희 향수'에 전적으로 기댔다. '그때는 암울했고 갑갑했지만 이제는 그리운' 그런 정서다. 조영진이 연기하는 박 대통령은 "성 실장도 술 한잔 하지?"라고 권유하는, 너무나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대통령이다. '유신'을 뛰쳐나온 영화가 또다시 '유신의 주인공'으로 파고드는 이 모순과 한계. 이게 보통 사람들의 정서라는 걸까. 15세. 5일 개봉. /김관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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