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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老鋪]<32> 부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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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老鋪]<32> 부여집

입력
2004.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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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만큼 소를 부위별로 감별해내는 절묘한 미각을 지닌 민족도 없을 것 같다. 소를 잡으면 버리는 게 하나도 없다. 살코기는 살코기, 내장은 내장, 뼈는 뼈대로 빠짐없이 먹거리의 재료로 쓰인다. 소 한 마리는 이처럼 세밀하게 갈라져 날로 먹거나 굽거나 국을 끓이거나 맑은 국물을 빼거나 진하게 고아내거나 장에 조리거나 하여 다채로운 형태의 요리로 되살려진다. 그 중에서도 곰국은 우리 음식문화의 특징을 가장 잘 살린 조리법이다. 쇠꼬리와 족 역시 보양식인 곰국으로 고아져 상 위에 오른다.

영등포구 당산동 '부여집'은 오직 꼬리탕과 족탕으로 반세기 넘게 손님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목화예식장 후문 뒷골목에 납작하게 숨어 있으니 소문만 듣고 찾아가기는 쉽지 않다. 맛 소문 못 지 않게 주인 임순애(林順愛·66)씨의 넉넉한 인심도 이 집을 찾아가는 이유일 것이다.

처음 가는 사람들에겐 놀라움의 연속, 그런 경험이 기다리고 있다. 실망에서 비롯된 그런 감정은 감탄의 연속으로 바뀐다. 우선 안팎이 너무 초라하다. 식당 내부도 기껏해야 30석 정도의 좁은 공간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그만 잘못 찾아왔나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그 마음은 찰나에 변한다. 꼬리탕과 족탕, 그 맛이 허름한 외관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배추김치 깍두기 파김치, 이 세 가지의 맛에 또 다시 놀란다. 모두 3년 묵은 것들이다. 그 오묘한 맛은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김치솜씨만으로 재벌이 되겠다는 농담이 나올 만 하다. 종종 김치를 조금만 싸 달라고 사정하는 손님을 달래는 일도 보통 아닐 듯싶다.

"음식은 첫째도 정성, 둘째도 정성입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라도 정성이 부족하거나 빠지면 제 맛을 낼 수가 없지요." 맛의 비법을 묻는 질문에 돌아온 임씨의 대답이다. 너무 평범하다, 아니 평범의 뒤에 정직과 진실이 자리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는 음식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설거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린다. 부여집을 시작한 친정어머니(金年愛·91년 81세로 타계)도 그런 마음을 잃지 않았다고 들려준다.

임씨 자신과 어머니의 고향은 충남 부여이다. 임씨의 기억에 따르면 어머니가 부여집을 차린 시기는 그가 고향의 중학교에 입학하던, 53년 무렵이다. 어머니는 30대에 아버지와 사별했다. 아버지의 오랜 투병으로 넉넉하던 가세는 기울었다. 어머니는 올망졸망한 세 딸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다행히 서울에 자리잡고 있던 친정조카들 주선으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음식솜씨가 남달랐던 어머니는 영등포에 허름한 집 한 칸을 빌려 음식점을 차렸다.

처음에는 도가니탕을 내놓았다. 소문이 나면서 상호도 부여집이라고 내걸었다. 그리고 세 딸을 불러올렸다. 어머니 곁으로 오면서 임씨는 배움을 포기했다. 어머니를 도와 음식 만드는 일이 더 즐거웠다. 임씨는 10대 후반 명동의 스키야키 전문식당 충무가(忠武家) 주인의 수양딸이 되면서 요리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갔다. 50년대 말 충무가는 서울에서 손꼽히던 고급음식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5·16쿠데타 주역 중에도 단골손님이 여럿 있었다. 10여년 동안 충무가의 실질적인 운영을 맡았던 임씨는 71년 대연각호텔 화재 이후 어머니 곁으로 다시 돌아갔다. 임씨가 충무가에서 사회경험을 넓혀가는 동안 어머니는 도가니탕 대신 꼬리탕과 족탕을 일품요리로 개발했다. 부여집이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은 해는 70년대 중반이다.

아들 형제를 둔 임씨는 가끔 부여집의 장래에 대한 생각을 한다. 단골손님들도 마찬가지로 관심을 보인다. 두 아들은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어느 누구도 아직까지 가업계승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정 뜻이 없으면 조카들에게라도 물려줄 작정이다. 분점을 내게 해달라고 조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모두 거절한다.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하지 않는 이상 손님 앞에 부여집 음식이라고 내놓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어머니 대부터 부여집과 인연을 맺은 단골은 헤아릴 수 없다. 오랫동안 한국정부기관에 자문으로 근무했던 한 미국인은 올 때마다 "김치 조금만 싸 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간청만은 예외로 들어주었다. 어떤 단골손님은 매번 "양이 너무 적은데…"라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곤 한다.

임씨는 주위 사람들에겐 '보살'로 통한다. 독실한 불자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넉넉한 인심, 남모르게 나눔과 베품을 실천하는 그의 삶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음식 값을 10년 넘게 올리지 않은 까닭도 손님에 대한 말 없는 배려였다. 꼬리탕과 족탕의 값은 지난해부터 3,000원 올려 1만5,000원을 받고 있다. 그나마 자기 집이라 집세를 안내도 되는 덕분에 버텨왔는데 그동안 다른 물가가 너무 폭등해 어쩔 수 없었다. 부여집은 보통 밤 9시면 문을 닫는다. 매주 일요일 쉬지만 미리 부탁을 하고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서 문을 여는 날도 있다.

부여집을 찾는 이들은 맛 있는 음식과 함께 정성에 흠뻑 취해 간다. 꼬리탕이나 족탕 한 그릇에 임금님 수라상 부럽지 않다는 표정이다. 그래서 부여집의 '임보살'이 언제까지나 그들을 맞아주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이기창 편집위원 lkc@hk.co.kr

도움말 김용범(소설가)

■전통 보양식 꼬리탕·족탕 콜라겐 풍부 암예방 등 효과

'여름 꼬리, 겨울 족.' 꼬리탕은 여름, 족탕은 겨울에 먹어야 제격이라는 우리 속담이다. 쇠꼬리는 생전에 쉴 틈이 없다. 들녘에 놓아 먹이는 여름 한철에는 더욱 그렇다. 극성스럽게 몰려드는 쇠파리와 진드기 떼를 꼬리로 쫓느라 정신이 없다. 네발 달린 동물은 꼬리에 양기가 모인다. 전문가들의 설명이니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외양간에서 여물을 먹는 겨울 한 철 소의 기는 발에도 모인다는 것이다. 그런 속담이 나올만한 이유다.

꼬리탕과 족탕은 전통 보양식으로 탕반류 중에서도 최고로 꼽힌다. 꼬리의 물렁뼈와 족은 단백질의 일종인 콜라겐을 비롯, 비타민 B1과 B2 등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콜라겐은 본드처럼 점성이 있는 성분으로 세포의 접착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인체의 근육과 관절, 피부에 탄력을 주는 고단백질로 암예방과 면역기능 향상에도 효과가 크다. 콜라겐은 오래 끓이면 물에 녹는 젤라틴으로 변하는데 이때 꼬리와 족 부위에 달린 살코기는 더욱 부드럽고 연해진다.

부여집은 나름의 비법을 갖고 있다. 보통 한우 한 마리의 꼬리는 무게가 1.5kg 안팎이다. 단골 도축장에서 배달해온 꼬리는 우선 지방을 모두 제거한다. 그런 다음 찬물에 여러 번 헹궈 건져놓는다. 그래야 핏물이 말끔히 빠진다. 고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기름도 모두 걷어낸다. 그래서 꼬리탕의 국물은 마치 젯상의 탕국처럼 맑다.

족은 너무 커도 살이 질기고 뼈가 굵어 살점이 별로 없다. 족은 생후 2∼3년 된 한우 암컷이 좋다. 그래야 4∼5시간 고아도 제 맛이 우러나온다. 족탕 국물은 우유빛에 가깝다. 부여집의 꼬리탕이나 족탕 모두 담백하면서도 구수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누린내와 느끼한 맛은 전혀 느낄 수 없다.

탕과 궁합이 맞는 김치 깍두기 파김치는 해마다 김장철에 한 번에 담가 갈무리 해놓는다. 맛의 비결은 역시 좋은 양념을 아끼지 않는데 있다. 무엇보다 젓갈이 맛을 좌우한다. 봄에 담근 멸치젓 갈치젓 황새기젓은 가을이 되면 잘 삭는다. 잘 삭은 젓갈을 푹 끓여서 국물을 내린다. 그 국물에 육젓을 넣은 다음 생새우를 갈아 첨가한다.

●바로잡습니다.

4월27일자 '동남도서' 제하의 기사중 권영수 신라대교수는 '서라벌대교수'의 잘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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