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2개월이 돼가고 있다. 인왕과 북악이 싱그런 초록으로 뒤덮인 것처럼 청와대도 이젠 격정을 누르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사건 결정 이후를 대비하는 모습이다. 목청껏 탄핵 기각과 철회를 외쳤던 여당도 잠잠해졌다. 청와대와 여당이 어느 때보다 자신있게 집권 2기를 준비하게 된 것은 총선 결과 때문이다. 여당은 '광화문 촛불시위'로 대표되는 민의(民意)에 힘입어 16년만에 여대야소 국회를 창출했다. 야당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도 한 몫 했다. 탄핵소추안 가결이 없었던 상황에서 여대야소를 예측하기란 아마 힘들었을 것이다.탄핵심판 사건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총선을 고비로 크게 바뀌었다. 광화문에서는 더 이상 촛불이 타오르지 않는다. 총선에서 확인된 탄핵심판 사건에 대한 국민적 바람을 헌재가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점차 확신이 돼가고 있다. 그러나 집권 여당은 이 같은 국민적 확신을 과신한 것일까. 헌재 결정은 멀었는데 여당에서는 벌써부터 '누구는 부총리, 누구는 장관' 식의 개각내용이 흘러나오고 있다. 법적으로 노 대통령이 복귀하려면 헌재에서 기각이나 각하 결정이 나온 이후라야 가능하다. 그런데도 여당의 속마음은 대통령 복귀 이후, 아니 더 나아가 '차기'에까지 이르고 있다.
여당은 총선에 이어 탄핵심판 사건에서의 승리까지도 예비하고 있지만, 탄핵 찬반 진영의 격렬한 논쟁과 다툼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결정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헌재 인터넷 홈페이지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의 현주소를 확인시켜주는 언어들로 채워지고 있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단해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또 위험한 일이다. 법률적 지식이 일천하고, 더욱이 법조인 경험은 전무한 범인(凡人)들로서는 그저 각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헌재가 내릴 결정에 관해 갑론을박(甲論乙駁) 할 뿐이다. 하지만 헌재의 구성과 역할에서 보듯 헌법재판관들이 담장 밖의 정치·사회적 현상에 눈 가리고, 귀 막고 있을 순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헌재가 총선에서 확인된 민의에 따라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기각 또는 각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분위기가 강해 보인다. 여당의 때이른 '축배'도 그런 인식의 결과물일 것이다.
탄핵심판 사건은 그동안 지나치게 정치사건화 했다. 총선이라는 대형 정치행사를 앞둔 탓이었다. 대통령이 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경고에 공개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하고, 정부의 위법 경고에도 거리 집회가 이어지는 등 법의 권위는 계속 무시됐다. 법의 '공평한 적용'을 외치던 이들조차 법의 '예외적 적용'을 요구하는 자신들의 모습과 정치논리가 법논리보다 우위를 점하는 모습에 혼돈과 괴리를 느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법리적 측면에서 탄핵심판 사건에 접근하려는 시도나 노력은 도외시됐다. 탄핵 가결이후 조성된 상황은 헌법이 정한 '법치주의'를 더 성숙한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였는데도 말이다.
기회는 다시 오고 있다. 헌재 결정문의 자구(字句) 하나하나는 법치주의에 대한 새로운 문제 제기가 될 것이다. 위로는 대통령부터 아래로는 '법 없이도 살'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납득하고 지킬 수 있는, 완성도 높은 법치주의 사회를 위한 새로운 의제 설정과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그런 작업이 없다면 헌재 결정 이후 우리 사회는 탄핵소추 가결 이전과 별반 달라질게 없을 것이다. 여당이 미리 또 하나의 승리감에 취해선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상진 사회1부 차장대우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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