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안성기씨는 올해 만 52세다. 그는 영화 '실미도'의 출연진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실미도' 뿐만이 아니라 요즘 촬영장에 가면 자신이 최고 연장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최근 출연작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는 그래도 사정이 괜찮았다. 김지영(67) 김영인(64) 윤주상(55)씨 등 선배들이 꽤 많이 나왔으니까.2월 개봉했던 '고독이 몸부림칠 때'도 나이 든 연기자들이 많이 출연했다. 송재호씨와 양택조씨가 65세, 주현씨가 63세, 김무생씨가 61세다. '감초 연기의 달인' 박영규씨가 51세로 나이가 가장 '어렸을' 정도다. 더구나 이 작품은 중견 연기자들이 그 흔한 조연이 아니라 작품 전체를 이끌어간 당당한 주연이었다.
영화판 주인공들이 젊어지고 어려진 지는 이미 오래다. 그래서 나이 든 연기자가 오랜만에 조연이라도 맡으면 늘 화제가 된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노인 진석 역을 맡았던 장민호(80)씨는 신문에 인터뷰 기사까지 실렸다. 그럼에도 '고독이 몸부림칠 때'는 흥행에 참패했고, 장민호씨는 한 때가 지나자 누구도 언급하지 않으며, 연장자들이 많이 나왔다 해도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주인공은 류승범(24) 윤소이(19)라는 젊은 신세대 연기자였다.
그러나 할리우드는 사정이 딴판이다. '국민배우' 안성기씨도 이들 앞에서는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올해 73세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2004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숀 펜)을 수상한 '미스틱 리버'를 연출했고, 67세인 잭 니콜슨은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서 58세의 다이앤 키튼과 호흡을 맞췄다. 두 작품 모두 흥행에도 성공했다. 더스틴 호프만(66) 수전 서랜든(58) 새뮤얼 잭슨(56) 등 건재하고 존경받는 중견배우가 수두룩하다.
최근 '어린신부'의 카메라감독을 맡았던 서정민(70)씨가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감각까지 늙지는 않았다. 내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일이 없어 노는 친구들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누구는 "60대 이상의 시대는 다 지나갔다"고 실언을 했는지도 모른다. 자국 이기주의, 백인 우월주의로 욕만 얻어먹는 할리우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경험과 원숙을 존경하고 아낄 줄 안다.
/김관명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