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두(69) 범우사 대표는 누구보다 책 욕심, 글 욕심이 많은 것 같다. 좋은 책을 만들고 팔겠다는 욕심이야 출판을 업으로 삼아온 사람이니 당연하지만, 자신이 글을 쓰고 그것을 책으로 묶어내려는 욕심 또한 유별나다. 1972년 수필문학에 '콩과 액운'으로 등단한 그는 79년 '사노라면 잊을 날이'를 냈고, 최근에는 수필집과 출판관련 전문서를 1년이 멀다 하고 줄줄이 쏟아냈다. '책의 길, 나의 길'(1990년)과 '한국출판의 허와 실'(2002년), '옛 책의 한글판본'(2003년) 등과 역서까지 포함하면 10권이 넘는다.
어린시절의 꿈을 노래한 수필 '연처럼'이 고교 교과서 현대문 자료집에 실릴 만큼 빼어난 글 솜씨를 지닌 그가 이번에는 10여년간 중국 여행을 하며 기록한 '한 출판인의 중국 나들이'를 펴냈다. 벌써 여섯번째 문집이다.
그는 "출판사를 갖고 있는 사람이 다른 곳에 부탁하기도 어색해 자기 돈으로 자기 책을 찍는다는 의미의 '사가본(私家本)'으로 내봤다"며 겸손해 하지만 그 취지만은 분명히 밝힌다. "행동 못지않게 기록도 중요해요. 어떤 사실도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그 사실 자체가 사라지고 잊혀지죠. 여행하면서 잡사(雜事)들을 기록하지 않고, 편안히 구경이나 하면서 즐기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유실(有實)'로 여정을 맺는 게 좋을 것 같아 틈 나는 대로 써놓았던 것입니다."
그가 중국을 처음 찾은 것은 91년. 우리와 수교도 되기 전이다. 그는 당시 국제출판학술대회의 중국 참석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방문한 이후 수시로 드나들면서 그때 그때의 일정과 느낌은 물론 안내원의 설명까지 꼼꼼히 메모해 두었다. 중국 출판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그는 2002년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에 이어 지난 4월 충칭(中京) 임정 청사내 진열관에도 '범우사 문고'를 개설한 것을 주요 성과 중 하나로 내세운다. 앞으로 중국 출판시장이 엄청난 폭발력을 지니고 있는 만큼 매장규모도 늘리고 투자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56년 도서출판 '창평사'에서 낸 월간지 '신세계'의 기자로 책과 인연을 맺은 후 반세기 가까이 출판에 몸담은 그는 출판론에 대해서도 재미있게 설명한다. "출판의 방식에는 비석식, 전답식, 투망식, 과수식 등 4가지가 있어요. 책 내기까지 오래 걸리고 의미가 있지만 팔리지 않는 책을 내는 것을 비석식 출판이라고 할 수 있고, 단시일 내에 베스트셀러를 노리는 것을 투망식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가장 바람직한 것은 과일나무처럼 3, 4년 키워놓으면 지속적으로 열매를 수확하는 과수식이죠."
4월 중순 부인(신영숙씨)과 사별한 그는 충격 속에서도 요즘 또 다른 '비석식' 출판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하나는 우리나라 근·현대 문학작품 중 알려지지 않은 소설, 시, 가요, 만담에 각각의 평론을 붙인 비평판 '한국문학'(전 100권)을 펴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국출판 40년사를 정리하는 일이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씨가 맡아 정리중인 비평판 '한국문학'은 오는 7, 8월쯤 1차로 10권이 나올 예정이다.
그는 "앞으로 출판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남북통일에 대비해 출판기금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고, 출판인들도 눈앞의 반짝 이익만 좇지 말고 멀리 내다보며 진득하게 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본 고베에서 태어나 70년대 초 반정부 시사월간지 '다리'주간으로 있을 때 필화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면서도 출판계의 거목으로 우뚝 선 그의 인생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자, 간절한 호소이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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