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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공동善 지킴이 서영훈 <31> 민주화합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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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공동善 지킴이 서영훈 <31> 민주화합추진위원회

입력
2004.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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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한 6·29선언 이후 헌법이 개정되고 12월6일 국민 직접선거에 의한 제13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됐다. 민정당 후보로 출마한 노태우(盧泰愚)씨가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김종필(金鍾泌) 등 3김씨를 제치고 당선됐다. 노 당선자는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뽑은 전두환(全斗煥) 대통령과 국민 직선으로 선출된 본인을 차별화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또 그 해 민주화시위를 지켜본 터라 국민이 원하는 민주회복과 국민화합의 중요성을 인식했을 것이다. 그러한 목적과 동기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민주화합추진위원회였다.하루는 도산기념사업회 회장실로 민정당의 핵심 인사인 남재희(南載熙) 의원이 찾아와 민화위 위원으로 참여해줄 것을 요청해왔다. 나는 정계의 내막도 잘 모르고 식견도 부족해 적임이 아니라고 사양했다. 얼마 뒤 그가 다시 찾아와 "민화위 추진본부에 있는 조일문(趙一文) 전 건국대 총장과 샘터사 이사장 김재순(金在淳)씨가 추천했다"고 하면서 "서 선생은 과거에 비판적인 발언을 많이 했는데 새로 등장하는 정권과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 의견을 많이 발언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참여자를 물었더니 독립운동가, 혁신계 인사, 언론계, 교육계, 종교계 인사들로 내가 존경하는 분들도 많아 승낙하게 됐다

민화위는 현역 정치인을 배제하고, 사회 각계의 원로급 또는 영향력 있는 중진 인사들 60명으로 구성됐다. 독립운동가 이강훈(李康勳), 원로언론인 이관구(李寬求), 고병익(高炳翊) 전 서울대 총장, 후에 국무총리를 하는 강영훈(姜英勳)씨, 이한빈(李漢彬) 전 부총리, 김원만(金元萬) 전 신민당 부총재, 조향록(趙香祿) 목사, 대통령 출마를 몇 번 하게 되는 이회창(李會昌)씨도 있었다.

88년 1월16일 첫 회의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이관구씨를 위원장으로 뽑고 민주발전, 국민화합, 사회개혁 등 3개 분과위원회를 구성하였는데 나는 국민화합 분과위에 소속됐다. 민화위는 40일 동안 활동했다. 내가 소속된 국민화합 분과위에서는 무엇보다 80년에 있었던 불행한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과 그에 대한 사후조치, 화해 보상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됐다. 광주 시민대표와 피해자 대표, 당시 군 지휘관들과 행정당국 대표들도 불러서 증언을 들었다.

나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현지에 다녀온 바도 있어 공정하고 객관적인 발언을 하기 위해 고심했다. 나는 "광주사태는 반 민주적 지배체제와 사회적 비리에 항거하는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서 70년대 이래로 지역적인 소외와 차별에 대한 감정이 폭발해 일어났으나 계엄군의 과잉진압에 의해 악화된 사태다. 당시의 최고책임자가 사과를 하고 피해자에게 명예회복과 실질보상을 해줘 서로 화해하도록 해야 한다. 책임규명이나 처벌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므로 뒤에 천천히 해결해야 된다" 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당시만 해도 누구나 조심하느라고 광주시민대표 외에는 이런 발언을 하지 않았다. 함께 참여한 선배나 친구들로부터 "왜 그런 발언을 하느냐"는 말을, 호남분들로부터는 "좋은 발언을 해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이한빈씨, 노정현(盧貞鉉) 연세대 교수, 이회창씨 등 몇 분의 발언이 특별히 돋보였다. 대부분의 위원들은 온건한 보수적 분들이었으므로 발언 내용들도 그렇게 느껴졌다.

그때 호남출신 위원인 시인 서정주(徐廷柱)씨가 "호남의 인심은 한 두 정권에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조선조 이래 오랜 역사적 배경이 있다"는 발언을 했다가 호남 지방에서 그를 규탄하는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또 부흥부 장관을 지낸 신형식(申炯植)씨도 박정희(朴正熙)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 때 일부러 지역차별을 한적이 없다는 말을 해 일부의 반발을 샀다. 두 분다 딴 뜻이 없이 점잖게 말한다고 한 것인데 억울한 비판을 받았다.

어쨌든 민화위는 전 정권의 반민주적인 부채를 씻어내고 새로 등장하는 정부의 짐을 덜어주는 역할을 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성과가 괜찮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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