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내가 둘째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남편으로서 아내의 분만 과정에 참여하는 가족분만을 한 것이다. 사실 그간 나는 아이 낳는 것은 산모의 몫이라고 생각해 왔다. 나는 어렸을 적에 "남자는 아이 낳는 모습을 보는 게 아니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아내가 아이를 낳을 때 남편의 역할은 조용히 분만실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그렇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남편도 아내와 함께 출산의 고통을 공유하는 일이 많아졌다. 사실 나는 가족분만에 참여하기까지 많이 주저했다. 그렇지만 가족분만에 참여한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족분만은 생명 탄생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회가 됐고 아내와의 사랑을 재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아내를 분만실로 들여보내고 나서 나는 수술복으로 갈아 입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나의 내면은 불안과 긴장이 극심하게 교차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가족분만실에 들어가면서 이런 감정은 어느 정도 줄어 들었다. 가족분만실의 조명은 화사했고 음악은 잔잔했다. 분만실은 으레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일 것이라는 선입견은 잘못된 것이었다. 아내도 불안감이 덜한 눈치였다.
드디어 분만이 눈앞에 다가왔다. 나는 아내의 어깨와 팔을 주물러 주었다. 그리고 아내의 손을 꼭 잡으며 "당신, 잘 할 수 있어! 첫째도 잘 낳았잖아"라고 귓속말을 해주었다. 더 이상은 아내를 위해 해 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 아쉬웠다. 그렇지만 아내는 분만을 마치고 나서 "당신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아내는 진통이 극에 달하자 내 손을 부여잡고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이가 우렁찬 울음 소리와 함께 어머니 뱃속을 탈출하면서 분만은 끝이 났다. 의사가 수술용 가위로 아이의 탯줄을 자르는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아내가 맨살을 찢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묵묵히 이겨내는 모습은 성스러움 그 자체였다.
아, 이래서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나오는구나.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을 보면서 생명 탄생의 신비에 가려진 고통을 알게 됐다.
이후 나는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더욱 조심스럽고 꼼꼼해졌다. 우리 부부는 고통과 감동의 순간을 함께 했다는 사실 때문에 애정이 더욱 깊어졌다.
/jh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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