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 지형이 '여대야소'로 재편되면서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한 재벌개혁이 다시 힘을 얻는 분위기다. '여소야대' 시절이던 지난해말 재계의 반대로 무산됐던 공정위의 계좌추적권이 부활되고, 재벌계열 금융회사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의 행사 범위를 축소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그러나 공정위가 다시 재벌개혁의 칼자루를 잡는 것에 대해 재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진통이 예상된다.공정위 손 들어준 열린우리당
공정거래위원회와 열린우리당은 3일 국회에서 당정협의를 갖고 재벌개혁의 강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을 개정키로 합의했다. 이날 합의의 핵심은 재벌 계열 금융회사에 대한 의결권 제한이다. 삼성그룹이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 지분을 다수 보유하는 등 금융회사를 통한 지배구조가 재벌의 일반적 행태인 것을 감안하면 금융 계열사 의결권 축소는 기업의 경영권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이 60%에 달한 상황에서 금융 계열사의 의결권을 축소하면 외국인의 적대적 M&A 시도를 방어하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정세균 정책위의장은 "재벌 금융회사의 계열사 의결권은 원래 없는 게 맞다"고 밝혀, 재벌정책의 무게중심을 '개혁'으로 옮겨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밖에도 공정위는 국회 다수당으로 변신한 여당의 도움을 받아 '숙원사업'을 모두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포함시켰다. 지난 2월4일자로 박탈된 계좌추적권을 3년간 재도입하고, 일반 지주회사도 금융 지주회사와 마찬가지로 자회사 이외의 국내회사 주식을 5% 초과해 소유하는 것을 금지토록 할 예정이다. 또 비상장·비등록 계열사를 통한 재벌 오너일가의 내부거래를 막기 위해 이들 회사에 대해서도 최대 주주나 주요 주주의 지분보유 현황 및 변동사항을 의무적으로 공시토록 공정거래법을 개정키로 했다.
격앙된 재계
당연히 재계의 반응은 격렬하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환경을 개선하겠다던 정부가 오히려 기업활동을 옥죄고 있으며, 기업정책이 다시 반(反) 기업으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며 강한 우려감을 나타냈다. 전경련 양금승 팀장은 "시한이 만료돼 폐지된 계좌추적권을 재도입하려는 것은 법 취지 자체에 어긋난다"면서 "부당내부거래도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오·남용의 부작용이 우려되는 계좌추적권을 공정위가 굳이 보유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재계는 또 지주회사가 자회사 이외의 국내회사 주식을 5% 초과해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소위 '5%룰'도 기업의 투자와 사업다각화를 해치는 '독소 조항'이라고 비난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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