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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들의 대화로 본/"아빠없는 쥐" 탄생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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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들의 대화로 본/"아빠없는 쥐" 탄생의 의미

입력
2004.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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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말 아빠는 필요 없나요?" 지난달 일본 도쿄 농대 고노 도모히로 교수팀은 '네이처'지에 난자의 염색체 유전자(DNA) 가운데 한 유전자를 제거한 뒤 여기서 추출한 핵을 다른 쥐의 난자에 이식하는 방법으로 '아빠 없는 쥐'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인간 복제 못지 않은 충격적 결과에 많은 이들은 이제 '남자 없는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닌지 혼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잠깐, 성급히 넘겨짚기는 아직 이르다. 포유류가 두 개의 성으로 이뤄진 데는 분명 이유가 있으며 이번 연구 결과를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아직 요원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아빠'가 필요한 이유와 이번 연구 성과가 갖는 의미를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를 통해 알아보자./김신영기자 ddalgi@hk.co.kr

레즈비언 커플, 아이 가질 수 있을까

#아들 아빠, 학교에 갔더니 여자 애들이 인제 남자는 필요 없다고 놀려요. 그게 사실인가요?

#아빠 아마 일본 대학 연구팀에서 '아빠 없는 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구나. 이번에 태어난 쥐는 아빠 없이 두 개의 난자만으로 만들어졌으니 놀랄 만도 하지.

난자와 정자 속에 들어있는 염색체 유전자는 어릴 때는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가 성숙하면서, 즉 사춘기를 지나면서 각각 다른 유전자를 작용하지 못하도록 막아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 간단다. 이런 현상을 '각인'이라고 하는데 과학자들은 이 현상이 유성생식을 유발하는 요인이라고 믿어왔어.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성과는 많은 유전자 중에서도 h19이라는 것을 인위적으로 막았더니 '난자―난자' 생식이 가능함을 알아냈다는 거야.

과학자들은 난자, 혹은 정자에 들어있는 염색체만을 갖고 생명체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했는데 그 때마다 실패했어. '난자+난자'는 배아에 영양분을 주는 조직이 구성되지 않아 금새 죽었고 '정자+정자'는 아예 자라지도 않았다고 하더라.

#아들 그렇다면 이제 레즈비언 커플은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인가요?

#아빠 아들아,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단다. 복잡한 윤리적 문제는 잠깐 접어두더라도 레즈비언 커플이 아이를 갖는 데는 아직 한계가 있어.

우선 신문에는 'h19 유전자를 제거했다'고 간단하게만 나왔지만 이를 위해서는 유전자 형질 변형 쥐를 만들어야 하거든. 유전자 형질 변형 인간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니.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사춘기를 지나면서 난자는 자동으로 몇몇 유전자를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h19이라는 유전자는 특이하게도 Igf2라는 유전자와 한 세트로 움직이게 돼 있어. 쉽게 말하면 h19이 나타나면 Igf2는 숨어있고 Igf2가 나타나면 h19이 숨는 거야.

난자가 정자 노릇을 하기 위해서는 h19이 없는 대신 Igf2가 있어야 하는데 난자는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h19을 나타내고 Igf2를 숨기거든. 이 상태에서 h19을 숨겨버리면 이 난자는 h19도, Igf2도 없는 기이한 형태가 되고 말겠지.

그래서 연구팀은 성숙하지 않은 아주 어린 생쥐의 난자에서 핵을 추출했단다. 인간도 마찬가지라서 혹시, 아주 혹시라도 이런 실험을 한다면 아주 어린 여자아이의 미성숙 난자를 구해야 해.

그렇다면 포유류는 왜 유성생식을?

#아들 아빠,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왜 인간 같은 포유류는 아빠와 엄마가 있어야 아기가 생기도록 만들어져 있는 건가요? 곤충은 그렇지 않잖아요.

#아빠 동물 중에 포유류만 유성생식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 유성생식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유전자를 가장 효과적으로 섞어서 다양한 종류를 만들어내려는 거야. 단순히 생각하기에는 힘세고 잘생기고 머리 좋은 유전자만 모아서 그런 사람만 많이 만들면 좋을 것 같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단다.

예를 들어볼까? 유전병 중에 '낫꼴형 적혈구'라는 게 있는데 이 병에 걸린 사람의 적혈구는 납작하게 생겨서 산소를 많이 담지 못해 늘 어지럽게 살아야 해.

그런데 말라리아균은 '낫꼴형 적혈구'에 침투를 못하거든. 아프리카에 가면 이 병을 가진 사람들만 말라리아 걱정 안하고 살 수 있어. 말라리아가 전 지구상에 퍼진다고 상상해 봐. '낫꼴형 적혈구'를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인류가 살아남을 확률은 훨씬 커지게 되는 거지.

#아들 그렇다고 여자끼리만 낳은 아이가 다 똑 같은 건 아니잖아요. 어차피 다른 사람이라면 유전자가 다를텐데….

#아빠 처녀생식을 통해 만들어진 아기도 물론 유전자가 충분히 섞여 있겠지만 성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없어서 딸만 태어나게 돼. 따라서 유성생식을 하지 않으면 남자, 즉 수컷이 모두 없어지는데 그렇다면 인류의 다양성은 반으로 줄어 버리는 거야.

게다가 이번 실험에서는 h19을 아예 제거해버렸는데 이것도 문제가 된단다. 유전자는 활동을 안 하는 각인 상태에 있더라도 완전히 없어지는 게 아니거든. CH3라는 물질로 유전자를 잠깐 덮어서 나타나지 못하게 하는, 휴업 상태라고 볼 수 있. 범죄가 없어서 잠시 경찰서를 닫아두더라도 '나쁜 놈'들이 출연하면 다시 열 수 있게 준비해 두는 거지. 실제로 자연 상태에서 유전자 각인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비상시 다시 발현할 수 있도록 돼 있어. 환경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니깐.

'붉은 여왕' 이론이라고 들어봤니?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사는 모든 개체는 다른 개체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진화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 유성생식을 통한 다양성은 꼭 필요해.

#아들 그렇다면 이번 연구는 큰 의미가 없는 건가요?

#아빠 물론 이번 연구의 과학적 성과는 굉장히 커. 각인 현상과 유성생식은 생명이 생겨나는 과정과 깊이 관여된 문제야.

h19이라는 유전자가 한 가지 성만 이용한 생식을 방해하는 변수임을 밝혀낸 것은 포유류의 발생 자체를 연구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을 주게 될 거야.

/도움말=김대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학습·기억현상연구단 선임연구원, 박세필 마리아 생명공학연구소장, 정해문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한용만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발생분화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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