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동안 숨겨진 비경을 볼 수 있다니 가슴이 두근두근 뜁니다."2일 오전10시 창덕궁 돈화문 앞. 25년만에 공개되는 창덕궁의 비경을 구경하게 된 50여명의 관람객 표정은 잔뜩 상기돼 있었다. 1969년 이후 통제됐다 1일부터 일반시민에게 개방된 창덕궁 후원(後苑)을 둘러 볼 생각에 모두가 들떠 있었던 것. 한달전 인터넷 예약 시작 2분만에 닫혀있던 창덕궁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는 행운을 잡은 자부심으로 이들의 어깨는 한뼘쯤은 더 올라가 있었다.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비밀의 공간
이번에 베일을 벗은 구간은 창덕궁 후원의 가장 끝인 옥류천과 반도지, 존덕정을 비롯한 1km. 관람객은 이미 개방됐던 구간(돈화문∼주합루)까지 합하면 총 3.1km를 둘러볼수 있다. 돈화문을 지나 인기 TV 사극 '대장금'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부용지와 규장각이 있는 주합루를 구경한 후 숲길을 3분쯤 걷자 '출입금지'가 적힌 차단막이 나타났다.
"여기부터가 자연보호지역으로 관리해 온 새 코스입니다." 문화유산해설가 정일심씨의 설명이 끝나고 차단막이 올라가는 순간 관람객을 태운 타임머신이 25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다. 울창한 숲, 지저귀는 새소리와 어우러진 형형색색의 꽃들이 눈앞에 아른거리자 관람객은 작은 탄성을 자아냈다.
잠시 후 관람객들은 우리나라 지도 모양과 닮았다는 반도지와 존덕정에 도착했다. 지붕 처마가 2층으로 6각형 모양인 존덕정은 정조가 왕권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한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는 글을 남긴 곳.
존덕정 왼쪽으로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글공부를 했던 폄우사가 속살을 드러냈다. 이 곳 앞마당에는 사람 보폭에 맞춰 지그재그로 징검돌이 놓여 있다. "왕세자가 이 곳에서 8자 걸음을 연습했다"는 해설가의 설명에 맞춰 관람객들은 뒤뚱뒤뚱 '8자 걸음'을 걸었다.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걸어 작은 언덕 하나를 넘자 창덕궁 후원의 백미 '옥류천'이 자태를 뽐냈다. 인조 때 큰 바위를 깎아 맑은 물이 폭포수처럼 떨어지게 만든 이곳에서 군신이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었다 한다.
해설가 정씨가 임금이 마셨다는 약수터 '어정(御井)'을 설명하기가 무섭게 관람객들은 너나 없이 몰려들어 약수를 '음미'하며 잠시 임금이 된 듯한 기분에 취했다. 김휘범(11)군은 "임금이 마셨던 물이라 그런지 뭔가 특별한 것을 탄 것처럼 맛있다"며 활짝 웃었다. 청의정과 소요정을 끝으로 '비밀의 화원' 감상을 마친 관람객들은 타임머신에서 내리는 게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
삶의 채취가 담겨있는 환상의 공간
부산에서 왔다는 조정희(33·여)씨는 "궁궐하면 크고 으리으리한 건물만 떠올랐다"며 "하지만 이 곳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찬(40)씨도 "서울 도심 복판에서 상쾌한 공기를 맛볼 수 있어 색달랐고 작은 것 하나도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평했다.
새로 개방된 코스는 하루3회 (오전10시, 오후1,2시), 매회 50∼60명씩 인터넷 예약(www.changdeok.ocp.go.kr)을 통해서만 관람할 수 있다. 예약은 관람일 한 달 전에 받는데, 창덕궁 관계자는 "발빠른 예약 만이 창덕궁의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문의 창덕궁관리소(02)762―0648.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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