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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98>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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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98>달리다

입력
2004.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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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5월3일 샹송 가수 달리다가 파리의 자택에서 한 움큼의 수면제를 입에 털어넣고 자살했다. 54세였다. 그녀의 유해는 몽마르트르 묘지에 묻혔다. 영화배우 알랭 들롱과 함께 부른 '파롤레 파롤레'로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달리다는 이미 생전에 프랑스어권 대중 가요계의 상업적 정점에 서 있었지만, 사적 생애는 그리 순탄치 않았다. 17년 전 오늘의 '성공한' 자살 이전에도 그녀는 30대 이후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달리다의 문화적 정체성은 세 국민국가에 속해 있었다. 그녀는 이탈리아인을 부모로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나 자랐고, 국제적 명성을 프랑스에서 얻었다. 대부분의 노래를 프랑스어로 불렀지만, 아랍어나 이탈리아어로 취입한 노래도 있다. 달리다의 본명은 욜란데 크리스티나 질리오티다. 21세 때인 1954년 미스이집트로 뽑힌 뒤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파리행 비행기를 탔고, 달리다를 예명으로 삼아 영화계와 가요계를 오갔다. 알랭 들롱을 비롯한 몇몇 남자들과 염문을 뿌린 뒤 라디오 프러듀서 뤼시앵 모리스와 결혼했지만, 불과 석 달 뒤 화가 장 소비에스키와 눈이 맞아 달아났다. 소비에스키와 헤어진 뒤에는 이탈리아의 가수 겸 작곡가 루이지 텡코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텡코는 자신의 곡 '차오 아모레'로 산레모 가요제에 나간 달리다가 그랑프리를 받지 못하자 자살했다. 그 직후 달리다의 첫 남편 모리스도 자살했다.

생전의 달리다는 영어권 세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럽, 중동, 일본에서는 대중의 우상이었다. 죽기 한 해 전 그녀는 지친 몸으로 영화 촬영을 위해 고향 카이로를 방문했다. 고향 사람들의 환대는 그녀 자신도 놀랄 만큼 뜨거웠고, 파리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활기로 충전된 듯 보였다. 그러나 그 활기는 완전히 사위기 직전 활짝 피어난 마지막 불꽃이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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