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 텔레비전도 볼 수 없고, 라디오도 들을 수 없고, 컴퓨터도 할 수가 없다. 집안에 촛불 몇 개 밝히는 것 말고 따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거의 없다. 어둠 속에서 아이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낸다. "야, 우리 동네 불 나갔어. 느 동네는 어떠냐?"30여년 전 중학교를 다닐 때 정전이 되면 다음날 시내 아이들은 숙제를 거의 해오지 않았다. 그때는 정전도 잦았는데, 그러면 선생님은 그 숙제를 다음날 해오라고 했다. 그때 시골에 사는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그러면 저희들은 앞으로 우리동네에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숙제 안 해와도 됩니까?"
웃자고 한 말이지만 정말 재치있는 친구였다. 그러나 정전이어서 촛불을 켜놓은 방은 불안하고 어수선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늘 등잔을 켜던 방은 밤이 깊을수록 그 작은 불빛 아래가 더욱 차분하고 조용하다. 우리 마을에 전기가 들어온 다음에야 시내 아이들이 왜 전기가 나가면 숙제를 해오지 못하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정전이 되어 촛불을 켤 때마다 그 친구의 얼굴이 생각난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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