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정전이 되면 생각나는 친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정전이 되면 생각나는 친구

입력
2004.05.03 00:00
0 0

저녁에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 텔레비전도 볼 수 없고, 라디오도 들을 수 없고, 컴퓨터도 할 수가 없다. 집안에 촛불 몇 개 밝히는 것 말고 따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거의 없다. 어둠 속에서 아이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낸다. "야, 우리 동네 불 나갔어. 느 동네는 어떠냐?"30여년 전 중학교를 다닐 때 정전이 되면 다음날 시내 아이들은 숙제를 거의 해오지 않았다. 그때는 정전도 잦았는데, 그러면 선생님은 그 숙제를 다음날 해오라고 했다. 그때 시골에 사는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그러면 저희들은 앞으로 우리동네에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숙제 안 해와도 됩니까?"

웃자고 한 말이지만 정말 재치있는 친구였다. 그러나 정전이어서 촛불을 켜놓은 방은 불안하고 어수선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늘 등잔을 켜던 방은 밤이 깊을수록 그 작은 불빛 아래가 더욱 차분하고 조용하다. 우리 마을에 전기가 들어온 다음에야 시내 아이들이 왜 전기가 나가면 숙제를 해오지 못하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정전이 되어 촛불을 켤 때마다 그 친구의 얼굴이 생각난다.

이순원/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