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은 지난 50여 년 동안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조합원의 경제자립을 위해 이바지함으로써 공동의 힘이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 주었다. 이 과정에서 체득한 자조, 자기관리, 자기책임은 농협의 원칙이 되고 이에 바탕을 둔 자주적 협동은 농협문화로 정착되었다.1,330여 단위조합에 240여만 조합원과 180조에 달하는 자산을 가진 거대 조직 농협이 지금 구조적 갈등으로 흔들리고 있다. 최근 경북의 장천농협이 조합장, 조합원, 노동조합, 농민단체 간의 갈등으로 결국 해산됐다. 농협의 붕괴는 특정 지역의 특정 단위조합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00년 7월 새로운 농협법에 의해 출범한 통합 농협중앙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농협에 대한 개혁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농협의 위기는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농협 정책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원칙에 대한 이해 부족이 낳은 결과다. 연초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농림부는 조합원의 상호 금융 금리를 공시하여 금리의 자율적 인하를 유도하고 신용과 경제사업을 분리하여 농협은 경제사업을 전담케 한다는 정책을 제시했었다. 과연 이런 정책이 농협 육성을 원한 것인지, 아니면 농협 몰락을 앞당기자는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농협의 주인은 조합원이며, 농협의 이용자도 조합원이다. 그리고 농협의 자주적 협동은 조합원의 이익 실현을 위한 수단이다. 만약 농협으로부터 얻을 것이 없다면, 조합원은 자주적 협동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상호금융의 금리는 어디까지나 조합원인 이용자 스스로가 결정할 문제다. 그런데도 정부가 금리 공시를 강요한다면 정부의 지나친 간섭일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조합원 및 이용자 중심의 농협이 단지 투자수익에만 급급한 조합원 및 투자자 중심의 영리기업으로 변질될 것이다.
비록 정부가 단위조합의 건전성과 안정성 제고를 위해 선거 관리 업무의 선관위 위탁, 합병 지원, 중앙회장의 비상임제, 전문경영인 영입과 독립경영 확립 등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 역시 원칙을 외면한 것이다. 농협의 기본적 가치 중 하나는 '민주적 구성'이다. 일부 조합장 선거가 물의를 빚었다고 해서 선거 자체를 선관위에 위탁하는 것은 민주 원칙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단위조합 합병도 조합원 의사를 반영해야 한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간다면 농협은 정부의 종속물이란 사회적 인식만 점점 더 확대될 뿐이다.
/전형수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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