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이냐, 원칙이냐. 경기활성화냐, 경제선진화냐." 투자활성화가 한국경제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재계의 재벌정책 궤도수정 압박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 참여정부의 재벌정책이 중대 분수령을 맞고 있다. 특히 이헌재 경제팀의 '개발연대식 기업가 정신 부활론'과 열린우리당의 실용주의 노선 천명이 재계 주장에 힘을 실어줄 지 주목된다.
재계 주장의 요지는 "돈이 없어 투자를 안 하는 게 아닌 만큼, 출자총액제한제나 재벌계열 금융회사의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축소만이라도 풀어주면 인수합병(M&A) 위협에서 벗어나 맘놓고 투자할 수 있다"는 것.
전국경제인연합회에 파견된 재경부 신제윤 국장은 "주요 그룹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들을 면담한 결과, 한결같이 경영권 방어 때문에 투자 엄두를 못 내는 실정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박사는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현금 확보, 자사주 매입 등의 엄청난 비용이 따른다"며 "대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놓고도 투자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개발연구원 임원혁 연구위원은 "M&A 위협은 총수가 적은 지분으로 그룹을 좌우하는 지배체제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출자규제 폐지는 이런 지배체제를 오히려 장려하자는 얘기인데, 이는 궤변"이라고 지적했다. 금융회사의 의결권 허용과 관련해서도 "환란의 주범인 재벌의 금융회사 소유를 더 부추기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재계 논리에 대해서도 비판적 견해가 많다. 홍익대 전성인 교수는 "출자제한이 생산적 투자기회를 박탈한다는 주장은 관심을 끌기 위한 재벌의 애드벌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출자규제 때문에 수조원의 투자가 포기됐다는 전경련 주장도 사실 포기된 것은 '투자'가 아니고 '주식 인수'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때문에 M&A 방어용 신주 발행 요건을 완화하는 등 다른 정책대안을 찾아야지 재벌개혁 골간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
결국 최대 관심은 열린우리당과 이헌재 경제팀이 어느쪽 손을 들어줄 지 여부이다. 이와 관련, 정세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원장은 "회계·경영 투명성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재벌정책 기조를 유지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직 장관 출신의 당 핵심 관계자는 "실용주의를 천명한 만큼 재벌개혁 원칙도 수정될 것"이라고 밝혀 당내에서도 적잖은 논란이 있을 전망이다. 재계 협조를 얻어 당장의 투자성과를 내야 하는 이헌재 부총리도 재계쪽에 가깝다는 게 지배적이다.
'경기활성화'와 '경제선진화'라는 정책 선택에서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 지도 관심사다. 3일 열릴 열린우리당과 공정거래위원회의 당정협의가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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