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이지누 사진·글
샘터 발행·1만 2,000원
풍경을 바라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고 마음 한 자락을 걸어 끌어안을 수도 있다. 20년 넘게 우리 땅 곳곳을 밟고 돌아다닌 사진작가 이지누는 마음의 거울에 풍경을 비추어 그 안에서 조용히 떠오르는 것들을 지켜본다. 그렇게 마음의 눈으로 바라본 전북 부안의 풍경을 '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에 담았다.
바다를 끼고 낮게 엎드린 부안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찍은 흑백사진 80여 장이 열 다섯 꼭지의 글과 어울려 웅숭깊은 맛으로 다가오는 기행산문집이다.
그의 발길은 곰소 염전과 포구, 줄포, 변산 바다, 해창 갯벌, 모항, 계화도, 직소폭포, 내소사와 청련암, 원효방, 마천대 등으로 떠돌며 풍경에 말을 건다. 풍경에 자신의 모습을 덧씌우는 그의 눈길은 퇴락한 포구와 염전에서 삶의 쓸쓸함을 읽고, 고승과 선사들의 혼이 스쳐간 절과 암자에서 불현듯 간절한 그리움에 사로잡히고, 고즈넉하게 펼쳐진 갯벌에서는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보기도 한다.
풍경의 행간을 따라가는 이 여정에 백석과 황동규의 시가 끼어들고, 원효·탄허·경허 등 큰스님들의 인간적 체취가 묻어나고, 남도 판소리와 육자배기 가락이 휘감아돌기도 한다.
지은이는 낮은 목소리로 고백하듯 글을 쓰고 있다. "풍경은 그를 보는 사람의 머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닮아간다"는 그의 말마따나 이 책에서 풍경은 참으로 유정하다.
작은 포구 모항을 일러 "가난한 사람들끼리라도 서로 모난 곳 흠잡지 않고 어울렁더울렁하던 곳" "치잣물 곱게 들인 명주 이불에 뽀얀 옥양목 자리처럼 포근한 곳"이라고 말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 그에게 풍경은 저만치 떨어져있는 무엇이 아니라 보는 이의 내면 깊숙이 파고드는 숨결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들이 벌써 오래 묵은 벗이 된다.
길을 떠나는 마음을 그는 이렇게 썼다. "상처가 깊으면 깊을수록 보다 깊거나 낯선 풍경 속으로 가려 하는 것은 삶이 그만큼 쓸쓸해진 탓이겠지요. 피폐해진 심경이 스산한 풍경을 만나면 서로가 서로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엉키어버린 실타래와도 같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뒤죽박죽이기 일쑤이지만 다시 마음이 튼실해질 무렵, 황폐한 마음 속에 스며있던 스산한 풍경은 새살 돋아나듯 또 하나의 아름다움이 되곤 합니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정갈하고 섬세하다. 염전이 있던 곳의 다 쓰러져가는 낡은 목조건물이나 굳게 닫힌 녹슨 철문, 너른 갯벌에 그림자를 드리운 채 박혀있는 말뚝 하나, 암자로 오르는 길의 조붓한 돌계단, 절 마당의 잣나무 꼭대기에 걸린 달 등 그가 포착한 장면들은 왠지 모를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다.
이 책은 '이지누의 우리땅 밟기' 첫 권이다. '우연히 만나 오래 머문 풍경' '우연히 만나 오래 사귄 사람' '우연히 만나 잊지 못하는 부처' '우연히 받아 더욱 귀한 선물'이 잇달아 나올 예정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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