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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최인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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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최인호 지음

입력
2004.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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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최인호 지음

여백 발행·9,000원

한 장의 사진이 있다. 1930년대 초 신혼의 부부다. 배우처럼 멋진 남자 옆에 선 새색시는 앳되고 철모르는 얼굴이다. 여자의 장차 인생은 이러하다. 아홉 명의 아이를 낳고 그 중 여섯을 건진다. 남편은 마흔 여덟에 세상을 떠나고 하숙집 주인이 돼 30여 년 인생을 자식들을 키우는 데 보낸다. 늘그막에는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사진 속 열 여덟 여자는 그때 한평생을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소설가 최인호(59)씨가 낸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소설이라기보다 에세이에 가깝다.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매우 진솔한 글쓰기로 털어놓은 책이다. 이야기는 대개 나이든 어머니와 부대끼는 날들을 통해 지나온 삶을 반추하는 내용이다. 4년 전 어머니를 떠나보낸 작가는 "어머니에 관한 글을 읽고 교정하면서 많이도 울었다. 새삼스러운 그리움 때문이 아니라 살아생전 어머니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슬픔이 솟구쳐 올라왔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그 어머니가 벅차고 부끄럽고 민망했던 적도 있었다. 자식들이 벌여준 생신잔치에서 어머니는 비닐봉지를 챙겨오셨다. "남은 것 싸다가 집의 개라도 주려고 그런다. 빨리 먹지 않으면 보이들이 접시째 들고 나가지 않데?" 그런 어머니에게 아들은 소리를 질렀다. "왜 그렇게 주책을 부리시는 거에요?" 들은 척도 않고 음식을 챙겨넣다가 새 옷에 국물을 흘렸다. "아까워라. 옷 버리고 말았네. 호호. 난 도둑질은 못하겠어. 호호." 그때 아들은 깨달았다. 어머니의 저런 '주책'이 자식들을 키웠다는 것을.

하반신에 마비 현상이 온 뒤 어머니는 바깥 바람을 쐬고 싶어 집안 식구들을 들들 볶곤 했다. '일종의 반발 같은 의식' 때문에 어느날에는 휠체어를 사서 어머니를 모시고 봄나들이를 떠났다. 민속촌의 대감집 양반집을 꼭꼭 다시 보려는 어머니를 휠체어에서 내렸다가 다시 운반하기란 짜증스럽고 울화통이 치미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눈을 마주친 중국인 사내의 눈시울이 젖는 것을 보았다. 딸을 데리고 나온 중년 부인은 휠체어 위 어머니 손을 붙들고 "우리 엄마도 다리를 못 쓰셨어요. 할머니를 보니 내 엄마 생각나요"라며 서럽게 울었다. 아들은 묵묵히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면서 생각했다. "그렇다. 어머니를 휠체어에 끌고 이곳에 나온 것은 내가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 짐짓 그런 것이다."

천하에 음식솜씨 없던 어머니 때문에 "커서 장가를 가면 요리 잘하는 마누라를 얻어서 탕수육도 해먹고 잡채도 해먹고 카레라이스도 해먹어야지"라고 다짐하곤 했다. 그 어머니가 다른 것은 못해도 밀전병 하나는 기막히게 부쳤다. 먹고 싶은 것은 다 먹는 제 자식들을 보다가, 문득 "니 색시보구 밀가루 반죽 속에 신김치도 넣구 호박도 넣구 해서 많이 많이 처먹어라"라며 밀전병을 부쳐주던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쪽진 머리를 하고 흰 고무신을 신는 구식 어머니가 부끄러워서 학교에도 오지 못하게 했던 게 느지막이 마음이 미어진다.

일본 출장 중에 어머니의 부음을 들었다. 어딘가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이 멍한 느낌이었다가 방에 들어와 꿇어 앉고선 눈물을 쏟았다. '우리 다혜 성재, 멀리 미국서 할머니가 뽀뽀한다'는 15년 전 어머니의 편지를 꺼내 들고는, 뒤늦게 답장을 쓴다. "어머니. 당신은 죽지 않았습니다. 늘 아들인 저와 함께 계셔 주십시오. 제가 아플 때 펄펄 끓던 이마에 어머니의 손이 닿기만 해도 신열이 내리던 그 기적의 손 그대로. 그대로 내게 어머니로 늘 나를 보호하고 내게 기적의 손을 이마에 대어 주셔요."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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