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관한 기억서성란 지음
문이당 발행·9,000원
'실천문학 신인상'(1996년)을 받으면서 등단한 작가 서성란(37·사진)씨의 첫 소설집 '방에 관한 기억'이 나왔다. 그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데 관심을 갖는 작가다. 소설 속 인물들은 비대한 몸 때문에 사회와 가족에게서 따돌림받고('당신의 몸'), 사랑이 아니라 의무감으로 자리를 지키는 배우자에게서 소외된다('검은 물체 뿔테 안경').
소통의 부재(不在)라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가장 잘 집중된 것은 중편 '방에 관한 기억'과 '할머니의 평화'이다. 연작인 두 작품 모두 할머니와 부모, 형제, 조카 등 대가족이 나오지만 구성원 간에는 교감이 없다. 별다른 직업이 없는 아버지는 권위만을 내세우면서 가족에게 고통을 준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하고 오빠는 군복무를 했고 돌아와서는 아버지가 반대하는 결혼을 감행한다. 일곱 명의 아이를 낳고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정신도 온전치 않다.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한 작은 아버지는 왕래조차 하지 않는다.
소설은 표면적으로 가난 때문에 고통받는 가족사를 그리고 있지만, 안쪽을 흐르는 주제는사회로부터 단절된 사람들의 마음의 아픔이다. '방에 관한 기억'에는 '열리지 않는 방' '숨어있는 방' 등 부제가 달려 있다. 방은 바깥 세상에서 고립된 공간에 대한 상징이다. 가족의 삶은 모두 방 안에서 전개되고, 거기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다. 이렇듯 결핍되고 소외된 사람들의 세밀한 모습을 통해 서성란씨가 보여주는 것은 "훼손과 박탈의 조건 속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끈질기게 탐색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근원에서부터 성찰해보게 하는 것"(평론가 황광수)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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