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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공동善 지킴이 서영훈 <29> 한모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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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공동善 지킴이 서영훈 <29> 한모음회

입력
2004.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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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는 대한적십자사나 흥사단 같이 오랜 역사를 가진 단체에 들어가 활동한 일을 주로 얘기해왔다. 그런데 30∼40년 동안 기성 단체 일을 반복하다 보니 차츰 권태도 생기고 시대에 뒤지는 것 같아 뜻이 맞는 동지들과 함께 새 시대에 맞는 운동을 할 수 있는 모임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흥사단의 이사장으로 있던 1985년 무렵이었다.마침 그 때 미국 조지아주립대 박한식(朴漢植) 교수가 중국을 거쳐 북한을 다녀오는 길에 나를 찾아왔다. 박 교수는 부친이 일제시대에 만주 하얼빈(哈爾濱)에 가있던 시기에 그 곳에서 태어나 만주에는 그의 고모도 생존해 계셨다. 그가 하는 말이 만주에는 해방 후 귀국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조선족 동포들이 많은데 이들을 위해 한민족뿌리찾기와 공동체의식회복운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도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나 미국, 일본 등에 흩어져 있는 우리 동포들을 돕고,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런 뜻에 호응하는 가까운 친구 20∼30명을 모아 우선 조선족 동포들에게 모금된 돈을 전달하고 문화 교류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옌지(延吉)에 살고있던 연안파 독립운동가 김학철(金學鐵)씨도 알게 됐다. 김씨와 해방 전 나가사키(長岐) 형무소에서 같이 복역한 송지영(宋志英) 조선일보 논설위원도 이 운동에 참여해 김씨에게 얼마간의 재정적 도움을 주었다. 모임을 2∼3년 계속하는 동안 동참자가 차츰 불어나 87년에는 회원이 100여명이 됐다.

6·29선언으로 민주화가 진행된 이후 우리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다가오는 세계화 시대에 우리 나라와 민족이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고 공존·협력하면서 발전할 수 있으려면 새 시대에 맞는 도덕성 회복과 문화 발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우리 한 민족은 한 마음, 한 몸의 공동체라는 뜻에서 '한모음회'라고 이름을 지었다.

조직의 목표를 건전한 민주사회 발전과 바람직한 민족통일을 위한 시민의식 개혁, 새로운 문화창조 운동으로 정했다. 생명경시 부정부패 등 7대 사회악을 제거하고, 무실(務實) 인애(仁愛) 창조(創造) 등 8대 공동선을 실천, 보급하자는 것이 운동강령이었다. 100여 개 항목에 걸친 생활실천윤리도 내가 초안해 회원들과 함께 실천하기도 했다. 거의 매주 교외에 나가 모임이나 등산을 하고, 몇 달에 한번씩 연수회도 하면서 심신 단련에 힘썼다.

내가 회장을 맡고 정근모(鄭根謨) 박사, 김신일(金信一) 서울대 교수, 김영운(金英運) 목사가 부회장을 맡았다. 정치인으로는 평민당에서 나와 야인생활을 하던 이중재(李重載) 양순직(楊淳稙)씨, 민주사회주의 운동가 황구성(黃龜性) 정태영(鄭太榮)씨, 신민당 정책기획실장 안준표(安俊杓)씨 등이 있었다. 학계에서는 정길생(鄭吉生·건국대) 유병용(兪炳勇·정신문화연구원) 박을룡(朴乙龍·포항공대) 황무임(黃戊姙·안양대) 윤내현(尹乃玄·단국대) 교수, 언론인으로는 조순환(曺淳煥) 현소환(玄昭煥)씨, 문인으로는 오인문(吳仁文·소설가) 권이영(權彛榮·시인)씨가 있었으며 배온희(裵穩熙)군이 간사를 맡았다. 과학자로 평판이 높았던 정 박사는 내 뒤를 이어 이 모임의 회장도 맡았다.

특별히 생각나는 분은 이중재씨인데 그는 평민당 수석부총재를 하다가 사임을 하고 이때는 완전히 자유로운 야인으로 우리와 등산을 다녔다. 하루는 그에게 평민당에서 나온 사연을 물었더니 말하기를 거북해 하면서 "평민당의 주인인 김대중(金大中) 총재는 명석하고 박식하며 노력도 비상해 나로서는 쫓아갈 수 없지만 본인의 주장이 너무 강해서 옆에서 도우려 해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서 "모든 것을 혼자 하기 때문에 뜻이 안 맞아서 나왔다"고 말했다. 우리 모임에는 시인 구상(具常)씨와 고범서(高範瑞) 안병욱(安秉煜) 김태길(金泰吉) 김용준(金容駿) 교수, 정재각(鄭在珏) 동국대 총장 등 각계의 많은 분을 초청해 강론도 했지만 회원들 자체 토론과 연수가 많았다. 이 모임이 후에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으로 새출발하게 된다.

/서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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