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에 손을 들어줄 개연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위험한 예단이지만, 법리적 해석이나 국민정서, 4·15총선결과까지 감안할 때 이렇게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다만, 결정과정을 통해 헌재는 대통령과 의회의 잘못등 그릇된 정치행태와 위법문제를 지적할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탄핵심판의 핵심이며 탄핵심판을 통해 거둘 수 있는 성과다. 총선 직후의 탄핵철회론도 그 대목 때문에 제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헌재의 결정은 법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성찰의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탄핵문제는 투표행태를 결정지은 지배적 요인이었다. 그 결과는 매우 합리적이었고, 민의는 무서웠다. 유권자들은 선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했으며, 짚어야 할 요소를 빠뜨리지 않았다. 16년 만에 재현된 여대야소는 안정적 국정 운영의 바탕이 될 것이다. 다음 달 중순, 탄핵문제까지 대체적인 관측대로 마무리되면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가 재개된다.
초점은 정치적 승리를 거둔 노 대통령에게 다시 모아진다. 노 대통령이 달라질 것인지, 달라지면 얼마나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가 궁금하다. 총선 직후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노 대통령은 인당수에 빠진 자신을 구해준 용왕으로 국민을 비유하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정치를 하자고 말했다. 직무정지상태에서 공적 성격의 행사를 하고, 당원도 아니면서 당정 분리의 원칙과 실제가 달라 보이는 발언까지 한 점이 시비거리가 됐었다. 일견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는 겸손과 신뢰의 정치, 조정의 정치, 대화와 협상의 정치를 강조한 점이 더 중요해 보인다.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한 이후 노 대통령이 안 보이자 세상이 조용해져 좋다는 사람들이 있었고, 총선이 끝난 뒤에도 "앞으로 4년을 어떻게 더 견디나"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골수지지자들은 교조적일 정도로 열성적 응원을 해왔다. 노 대통령만큼 시비와 포폄(褒貶)이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찬반을 통해 갈등과 불안이 더 커졌던 것도 사실이다. 총선 후에는 좌향좌에 대한 우려나 보수 대 진보의 대립구도에 대한 걱정이 잇달아 표명됐다. 경제정책의 방향성, 입안과정의 진통과 논란을 예상하며 불안해 하는 기업인들도 많다. 우리 사회는 좌와 우나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 제대로 분화·정착되지 않은 상태인 채로 이념적 내전을 치르는 중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보수(補修)하는 보수'라는 말이 나오고, 저마다 중도를 표방하거나 실용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정치지형을 만들어낸 노 대통령이 맨 먼저 할 일은 헌재의 결정을 그야말로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탄핵 전 기자회견을 통해 선관위의 공문을 낭독하면서 어디에도 선거법 위반이라는 말이 없다고 말해 탄핵을 유발했었다.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물건이 상했다는 소비자의 불만을 인정하지 않는 장사꾼의 억지논리와 다름없었다. 이번에도 헌재의 결론만 받아들여 이를 강조한다면 실망과 반발이 커질 수 있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대통령의 복귀는 상대를 인정하는 관용의 정치와 사회통합을 기약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시련과 정치적 연금의 기간인 직무정지기간은 아울러 새로운 대통령학습의 기간이 돼야 마땅하다. 자신과 다른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말장난 같지만 좌향우, 우향좌의 통합적 리더십을 펼쳐야 할 상황이다. 종전처럼 주변인적 정서와 소수자의 투쟁자세, 안티의 의식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의회권력까지 장악했다고 해서 강력한 대통령이 되려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뉴 노무현, 열린 노무현을 기대한다.
/임철순 수석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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