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1년간 공부하면서 우리나라와 가장 차이가 크다고 느낀 부분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였다. 미국인들은 장애인을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그곳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에 겪은 일이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던 길이었다. 두서너 정거장쯤 갔을까. 버스 정거장에는 휠체어를 탄 한 남자가 있었고 버스는 그곳에 멈췄다. 곧바로 버스의 한쪽 바퀴의 바람이 빠지면서 차가 한쪽으로 기울더니 보도와 차도를 잇는 경사로가 생겼다. 그러자 앞쪽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아무런 불평도 없이 뒷좌석으로 이동했고, 버스기사는 앞쪽 빈 좌석을 창문 쪽으로 밀어붙였다. 그러자 장애인용 휠체어가 있을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확보됐고, 버스기사는 장애인에게 밝게 인사하며 휠체어를 끌어 비치된 고정 벨트로 휠체어를 고정시켰다.
시간이 꽤나 지체되었으나 그 버스에 탄 누구도 불평을 하거나 눈살을 찌푸리지 않았다. 당시 나는 과연 우리도 이렇게까지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 한 아파트 단지에서 장애인 전용 주차 공간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없앴다는 기사를 읽었다.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무신경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사회에도 점차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늘어가고 장애인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기사거리가 될 만한 것이 아닌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여전히 우리는 그런 일들을 기사로 접하게 된다. 드문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고로 장애인이 된 가수 강원래씨가 장애인의 날을 맞아 어느 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함께 하는 것'과 '동정하는 것'의 차이를 이야기하며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보았다.
지난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장애인의 날이라고 해서 모두가 장애인 체험을 하고 자원봉사를 할 필요는 없다. 이런 날을 통해 단 하루만이라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나 오만한 마음을 반성하고, 많은 사람들이 늘 우리 주위에 있지만 함께 하지 못하는 이 땅의 소외된 장애인들을 보는 시선을 조금씩 바꾸어 간다면 의미 있는 날이 될 것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밑바탕이 된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강미림 한국외대 신방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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