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시대 유대에는 희년법(禧年法)이 있었다. 50년마다 희년이 돌아오면 노예를 풀어주고 부채를 탕감해주며 땅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했다. 사회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서울 종로구 창신2동 성터교회가 해방과 자유, 회복이라는 희년의 정신을 되살리고 있다.
1954년 세워져 올해 50주년으로 희년을 맞는 성터교회는 교회 내부 잔치는 물론 인근 주민과 그 의미를 함께 나눈다. 성터교회는 25일 희년 선포 예배를 갖고 부채탕감 운동을 펴기로 했다. 가난한 이웃의 전기·수도·가스·전화 사용료를 대신 내주는 것이다.
공과금을 못 낼 정도로 가난해 전기, 수도가 끊어져 기초 생활조차 못하는 이웃들을 위해 교회는 최근 동사무소와 공동 실태 파악에 나섰다. 경제력이 있는 상습 연체자는 배제하고 형편이 정말로 어려운 수십 가구를 선정해 하반기부터 지원하기로 했다. 방인성(方仁成·50) 담임목사는 " 기초생활보장제 등이 시행되고 있지만 가난하면서도 수혜 대상에서 제외된 사람들이 있어 그들을 도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운동은 교인끼리의 부채 탕감이다. 교회도 사람 사는 사회, 다른 교인으로부터 급히 돈을 빌리고도 갚지 못해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방 목사는 "돈을 빌리고도 일정 기간이 넘도록 갚지 못하면, 시간이 더 지난다고 해도 갚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능력이 없어 못 갚는 교인의 빚을 채권자가 과감하게 탕감해줌으로써 그가 지닌 마음의 짐을 벗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난 대물림 타파 사업'도 편다. 생활 의지가 강한 가정 한두 곳을 골라 조그만 구멍가게라도 차릴 수 있는 최소한의 창업자금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방 목사는 "의지는 있지만 배우지 못해서, 돈이 없어서 일을 못하는 사람이 많다"며 "이들에게 창업자금을 지원해 자립 기반을 갖출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교회는 이밖에 지방 출신 가난한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작은 기숙사도 짓고 교회 건물을 지역 주민의 모임 장소, 아이들의 공부방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지금은 많이 정비됐지만, 이 교회가 있는 지역은 10여년 전만 해도 판자집이 즐비한 동네였다. 지금도 새벽에는 인력시장이 서고 재중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모여 산다. 교회가 희년 행사로 부채탕감운동 등을 펴기로 한 것은 이들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방 목사는 "우리 사회는 분단과 지역감정, 빈부 격차 등으로 사회 갈등이 매우 심한 편"이라며 "예수가 실천한 평화와 상생, 구원의 희년 정신을 교회가 본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가파른 언덕길에 서 있는 성터교회는 신도 450여 명으로 넉넉한 살림은 아니다. 한 교인은 "부채탕감운동 등을 위해 서로가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맬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