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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개헌 논의는 아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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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개헌 논의는 아래로부터

입력
2004.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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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총선이 끝나자마자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중임 대통령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개헌론이 급속히 제기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당선자 연찬회에서 그런 주장이 나왔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4년 중임제 소신을 밝혔다. 민주노동당 역시 4년 중임제와 결선투표제가 공식 입장임을 밝혔다. 정식 여론조사는 아니지만 일부 인터넷 설문조사에서도 찬성 의견이 적잖이 나오고 있다.권위주의 시대에 걸핏하면 이루어졌던 개헌으로 인해 한국 헌정사는 사실 개헌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948년 헌법 제정 이후 무려 9차례에 걸쳐 헌법이 개정되었던 사실은 이를 증명해 준다. 개헌이 이처럼 빈번하게 이루어졌던 것은 주로 독재자의 장기 집권을 보장해 주기 위한 개헌이 이루어져야 했고, 또 민주화가 이루어졌을 때 이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개헌이 다시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민주화 과정에서 현행 헌법이 만들어졌던 1987년 개헌은 대통령 직선제를 원했던 아래로부터의 국민적 요구가 받아들여졌던, 개정 과정이 가장 민주적이었던 개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문제가 없지 않았는데 그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대통령 임기 5년의 단임제 문제였다.

이후 시행 과정에서 드러났지만 임기 5년의 대통령 단임제는 임기말 레임덕 현상으로 인해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어렵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은 레임덕 현상은 누가 대통령이 될지 예측이 어려운 상황까지 겹쳐질 때 일종의 승계 위기로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마다 격심한 갈등과 불안정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민주화 이후 우리 정치의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이처럼 대선 때마다 주기적 불안정을 초래했던 5년 단임의 대통령제는 87년 개헌 당시 정략적 합의의 산물이었다. 당시 대통령 후보들이었던 정치인들은 당장의 대선에서 실패할지라도 차후 대선을 준비할 수 있도록 5년 단임제에 손쉽게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87년 개헌은 그 과정이 민주적이었을지라도 내용상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현행 헌법의 개헌 문제는 진지하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 중임 문제뿐만 아니라, 기본권 문제, 양원제 문제, 결선투표 문제, 정·부통령 러닝메이트제, 그리고 최근 문제가 되었던 탄핵 조항에 이르기까지 현 헌법 전반에 걸쳐 무엇을, 어떻게 개정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헌법을 고치는 문제는 섣불리 할 수 없으므로 개헌을 한다면 바로 그 때 그 동안 문제가 됐던 헌법 조항 전반을 함께 고려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졸속으로 되지 않으려면 개헌 논의에는 적절한 순서가 필요하다고 본다. 아직은 충분한 시간이 있는 만큼 일단 학계나 시민사회 수준에서 헌법 개정에 대한 광범위한 토론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치권이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정치권이 정략적 의도에서 먼저 개헌 논의에 나설 경우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하거나 국정 추진의 우선 순위가 전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이제야 비로소 일을 할 수 있는 실제적 여건이 갖추어졌다. 따라서 일단 정상적인 국정 운영에 매진하면서 개헌 논의는 좀더 차분히 진행시킬 필요가 있다.

즉, 현행 헌법에 대한 개헌 문제는 우선 학계나 시민사회 수준에서 충분히 논의된 이후 정치권에서는 2006년 즈음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정당한 순서이다. 헌법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적 사안이 되어야 하며, 그런 점에서 논의는 충분한 시간과 충분한 숙고 속에서 아래로부터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정해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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