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이념 경쟁이 본격화할 조짐이다. 열린우리당 의원 당선자 절반 이상이 28일 끝난 워크숍 설문조사에서 '중도 진보'를 자임한 데 이어 29일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는 '중도 보수'로 이념 좌표를 약간 왼쪽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잖이 제기됐다. 물론 이런 흐름이 양당의 공식 노선으로 채택될 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한다. 각 당 내부의 복잡한 역학구도와 이념 스펙트럼은 분명한 정체성 표방을 더디게 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양당이 기존 이념의 틀과 상호 배타성을 갖고선 원만한 정국운영과 지지기반 확대가 불가능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어 각기 최종 결론은 '중도 진보'와 '중도 보수'가 될 개연성이 크다는 분석이다.여기에 정통 진보, 즉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민주노동당이 한 축을 차지하면서 17대 국회는 유연한 진보와 보수, 그리고 선명한 진보정당이 경쟁하는 3각 체제로 굴러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공히 '중도'를 앞세운 것은 두텁게 형성돼 있는 중도파 유권자를 겨냥한 '중원(中原) 싸움'의 성격이 짙다. 각기 30%대로 파악되고 있는 고정 지지 층만으로는 차기 대선 등 장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다른 선진국에도 양 극단의 이념을 배제한 중도성향, 중간 층 유권자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며 "양당의 움직임은 이런 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향후 여야관계와 국정 운영이 전보다 매끄러워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이념적, 정책적 거리가 좁혀지면서 정쟁의 소지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다. 양 당의 노선 정의도 "개혁 노선 위에서 실용적으로 대응한다"(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 "실용적 개혁주의를 추구한다"(한나라당 박세일 당선자)로 엇비슷하다. 실제로 16대 국회에서 여야 대립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던 햇볕정책에 대한 이견이 총선 후 한나라당의 개방적 변화로 상당부분 해소되고 있고, 국가보안법 개정문제 역시 절충의 여지가 엿보인다.
그러나 이는 겨우 시작일 뿐이다. 단순한 선거전략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정책현안에 당의 정체성을 어떻게 투영시킬 것인지 지금부터 양당의 치열한 연구와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강원택 교수는 "대미 관계 등 외교·안보분야, 경제정책 기조, 노사관계 및 재벌 정책 등에 대해 얼마나 정교한 현실적 대안을 내놓느냐가 각 당의 차별성과 위상을 결정짓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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