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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안경 너머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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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안경 너머로 보는 세상

입력
2004.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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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동안엔 안경을 쓴 아이를 보지 못했다. 안경은 할아버지거나 교장 선생님 같은 사람들만 쓰는 것인 줄 알았다. 그리고 어쩌다 시내의 아주 눈 나쁜 아이들만 쓰는 것인 줄 알았다.초등학교에서 시내의 중학교로 입학을 하니까, 60명쯤 되는 한 반에 안경을 쓴 아이가 하나거나 둘 있었다. 안경을 쓰면 그 아이는 일단 누구에게나 "야, 안경!" 하고 불릴 만큼 여전히 귀한 숫자였다.

그 시절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는 셋째 외숙모는 외할아버지를 뵈러 올 때, 늘 안경을 벗은 맨 얼굴로 더듬더듬 벽을 짚어가며 사랑에 나가서 인사를 드리고 왔다. 그 사이에 외숙모의 안경을 써보면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써야지만 비로소 세상이 보이는 외숙모의 눈은 그때 얼마나 나빴던 것일까.

우리 아이 하나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안경을 썼다. 형제가 둘이다 보니 쓴 놈은 그게 답답해 죽겠다고 그러고, 멀쩡한 놈은 저도 얼른 눈이 나빠져서 안경을 썼으면 좋겠다며 수시로 형 안경에 손을 대다가 야단을 맞고.

어쩌면 문명시대라는 것이 어린 아이들 얼굴에 안경을 씌우는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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