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인플루엔자’는 섬뜩한 영화다.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그램의 하나로 상영중인 이 작품은 지하철 행상을 전전하는 서른 한 살의 무직자 조혁래씨 이야기다. 배가 고파 골목길 쓰레기 봉투까지 뜯던 그는 범죄의 길에 들어섰다가 파국을 맞는다. 영화는 폭력의 진창 속을 헤매는 주인공을 폐쇄회로(CC)TV의 냉랭한 시선으로 지켜본다.폭력의 전염 속도는 엄청나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윤제문(34) 고수희(28)의 무시무시한 연기다. 연출가 박근형과 함께 ‘청춘예찬’ ‘쥐’ ‘삼총사’ 등을 만든 배우들이다.
이들의 전공은 평온한 일상 뒤에서 숨쉬는 야비한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것. 윤제문은 멍한 표정 속에 불만과 악의를 비수처럼 숨겨놓았다가 별안간 관객의 등짝을 친다. 현금인출기 앞의 할머니를 자빠뜨리고 “이대로 누워 계세요”라고 말할 때의 표정이나, 할아버지의 돈을 빼앗고 칼을 휘두를 때의 모습은 악역 연기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윤제문은 음반 장사를 하는 큰 형과 사업을 함께 하다가 스물 다섯 늦은 나이에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정글쥬스’(2002)의 조폭 행동대원으로 장편영화에 데뷔했고 곧 촬영에 들어갈 ‘남극일기’에서는 반골 기질의 탐험대원으로 나선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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