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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포츠 50년]"링 설 때부터 설렁탕집 주인될 운명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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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포츠 50년]"링 설 때부터 설렁탕집 주인될 운명인듯"

입력
2004.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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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사람/복싱 前세계챔프 유명우"경기 1주일 전부터는 오렌지 주스와 과일 밖에 못 먹다가 당일 아침 계체를 통과하고 나서 먹는 게 설렁탕이었어요. 빈 속에 먹어도 몸이 편하고 힘을 돋우는데 그만이었죠." 80년대 세계 경량급 최고의 복서 유명우는 이미 복싱을 그만두면 설렁탕 집 주인이 될 운명이었나 보다. 4년전부터 수원 조원동 운동장사거리에서 200석 규모의 '유명우 가마솥 설렁탕'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조리는 남에게 맡겨도 맛은 항상 직접 체크한다. 설렁탕은 재료와 끓이는 시간, 열의 강도가 맛을 결정한다"며 "우리 설렁탕은 진하고 구수한 맛이 소문나 있다"고 자랑한다.

세계 주니어 플라이급의 최다방어(17차)와 최단시간 KO승(2분46초), 국내선수중 첫 세계타이틀 재탈환, 최다 세계타이틀전(21회), 최다연승(36승)등 수많은 기록을 수립했던 유명우.

이제 40세가 된 그가 설렁탕 집 주인에 체육관관장과 프로모션 대표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대해 사람들은 "선수시절부터 워낙 성실하고 영리했으니까"라며 당연한 일로 받아 들인다.

그는 사우나에 들어가지 않고 운동으로 체중을 빼는 지독한 연습 벌레였으며 링에 올라가면 일발필도의 펀치는 없어도 뛰어난 안면수비에 현란한 연타와 몸놀림, 정확한 펀치로 상대를 쉴틈 없이 몰아 붙이는 최고의 테크니션이었다.

후배들에게는 항상 "나는 선천적인 복서가 아니고 노력으로 정상에 올랐다. 복싱에는 왕도가 없다"고 강조해왔다.

대전료 문제에 절대 양보가 없고, 챔피언이 되어서도 한 동안 전철을 타고 다닐 만큼 계산이 명확하고 검소했다.

"거만해 지지 말고 신인 때 마음을 유지하자"며 하루하루 자신을 다잡았다는 게 롱런 비결이었다.

같은 시대를 풍미한 장정구와의 라이벌 전, WBC IBF 챔피언 카바할과의 통합전이 성사되지 않아 더 큰 돈을 쥘 기회를 놓쳤지만 그래도 93년 9월 은퇴할 때까지 대전료로만 18억을 받았고, 매니저료 등 경비를 제외해도 10억원 이상의 순수입을 챙겼다.

은퇴 후 TV해설을 하며 집안의 예식장 사업을 돕던 그는 절대 무리한 투자를 않고 기다리다가 설렁탕 집을 차려 성공을 이루었다. 체인점을 내달라는 요청이 많지만 맛을 유지하기 위해 사절하고, 추후 직영점을 늘릴 예정이다.

요즘에는 복싱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11년 전 자신의 스파링 파트너로서, 타이틀 재탈환 후 1차 방어전을 할 때 오픈게임을 뛰었던 대원체육관 후배 지인진이 드디어 세계챔피언이 되어 신이 나기 때문이다.

또 선수시절 낳은 아들도 고교에 들어가더니 복싱을 하겠다며 아버지를 챔프로 만든 김진길 관장의 대원체육관에 나가고 있다.

"아들까지 복싱을 하기를 원하지는 않았지만 굳이 본인이 하고 싶다는데 막을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안타깝죠. 친분 있는 선수가 경기를 할 때는 피가 마르는 것 같은데 아들 경기는 어떨까요."

자신이 중학 1학년 때 복싱의 남자다움에 빠져 체육관을 찾았듯이 아들도 돈 때문이 아니라 운동이 좋아 하겠다니 지켜 보겠다는 것.

그가 신림동에서 운영하는 '범진체육관'에는 슈퍼 라이트급 한국챔피언 김정범과 주니어 플라이급 세계랭커인 김재원이 있다.

지인진의 챔피언등극이 국내 복싱열기가 되살아 나는 계기가 되기를 열망하는 유명우는 자신도 반드시 세계챔피언을 한명은 만들고 말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1991년 4월 28일/"작은 들소" 국내 최다 17防 신화

85년 12월, 4년간 계속된 한국의 WBA (세계권투협회) 도전 12연패에 종지부를 찍고 주니어 플라이급 왕좌에 올랐던 유명우.

이후 한차례의 판정시비도 없이 거침없는 승리행진을 벌여 온 '작은 들소'의 타이틀 방어전이 마침내 17차에 이르렀다. 이미 국내기록인 WBC 전 챔피언 장정구의 15차 방어를 뛰어 넘은 유명우로서는 카오사이 갤럭시(WBA 주니어밴텀급 챔피언)와 함께 현역 최다 방어기록 보유자가 되며 주니어 플라이급 역대 최다방어를 기록하게 되는 의미 있는 경기.

도전자 카지콩 단푸타이(태국)는 그 동안의 방어전에서 한번도 겨뤄본 적이 없는 왼손잡이라 다소 고전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그도 상대가 되지 못했다.

유명우는 잠시 탐색전을 벌인 후 2회 들어 전광석화 같은 왼손 훅으로 첫 다운을 뺏더니 5,7,10회에 소나기 좌우 연타로 다시 도전자를 다운 시키고 10회 2분 2초 만에 TKO승을 거두었다.

국내에서는 최고인 1억1,1000만원의 대전료를 받고 링에 오른 그는 17차 방어성공과 함께 국내 연승기록도 36승(종전 유제두의 34연승)으로 늘렸다.

그러나 그도 '우물 안 개구리'였던가. 장정구와 같이 이때까지 모든 방어전을 국내에서 치렀고 91년 12월 처음 해외(일본 오사카)에 나가 가진 18차 방어전서 일본의 이오카 히로키에게 12회 판정패, 6년 1개월 만에 왕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하지만 유명우는 92년 11월 같은 장소에서 이오카에게 판정승, 11개월 만에 타이틀을 되찾고 93년 7월 호소노 유이치와의 1차 방어전을 무사히 넘긴 후 타이틀을 반납, 영원한 챔프로 남았다.

■1968년 4월 30일/"亞게임 개최 반납합니다"

한국은 80년대 이후 정부 체육단체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나서 국제대회를 유치하면서 올림픽과 월드컵, 유니버시아드,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행사를 모두 개최했지만 경제적인 곤란 때문에 국제적 공신력과 체면의 손상을 감수하며 유치한 대회를 반납한 적도 있었다.

한국은 66년 12월 방콕아시안게임 기간 중 열린 AGF(아시아경기연맹) 총회에서 70년의 제6회 아시안게임을 서울로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한국 스포츠 외교의 첫 작품이었다.

KOC(대한올림픽위원회)는 우리의 형편에 맞는 조촐한 대회를 개최한다며 방콕대회의 7분의 1밖에 안 되는 7억5,000만원을 예산으로 세우고, 서울시는 서울(동대문)운동장과 효창운동장 보수및 장충공원 종합개발로 경기장을 마련하며 청계천 복개도로를 따라 선수촌 아파트를 건립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다음해 6월 박정희대통령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달성을 위해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할 시기에 막대한 자원을 할애할 수 없다"며 포기를 지시했다. 대통령에게 재고를 건의했던 KOC는 결국 68년 4월 30일 AGF 집행위에서 "선수 임원의 안전과 평화 분위기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대회를 공식 반납했다.

대회가 2년 밖에 남지 않아 자칫 대회 유산의 책임을 떠안게 된 KOC는 인수국 물색에 적극 나섰으나 처음 의사를 타진한 일본으로부터 거절 당하고, 결국 전 대회 개최국인 태국으로부터 '대회 적자 분의 절반을 한국이 부담하고 태국과 기타 회원국이 4분의 1씩 분담한다'는 조건으로 간신히 승낙을 얻어냈다. 한국은 다음해 실업계에서 갹출한 25만달러를 태국에 전달했다.

■1989년 4월 29일/차붐 300게임 출장 대기록

바이에르 레버쿠젠 소속의 갈색 폭격기가 서독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서 외국인으로는 첫 300게임 출장의 대기록을 수립했다.

78년 12월 독일에 첫발을 디딘 차범근(51·현 삼성감독)은 79∼80시즌에 프랑크푸르트팀에서 분데스리가 1부리그 선수를 시작해 4년간 122게임을 뛰고, 83∼84시즌 레버쿠젠으로 옮긴 후 첫 해에 전게임 출장(34게임)을 기록하는 등 거의 매해 30게임 정도 출장했다.

철저한 체력관리와 뼈를 깎는 강훈으로 89년 36세까지 뛴 그는 288게임 이후 허벅지 부상으로 2게임을 결장하다가 4월 15일 쾰른과의 홈경기를 뛰고 29일 우에딩겐과의 경기로 300게임을 채웠다.

10년간의 통산득점은 98골. 85∼86시즌 17골로 득점 4위까지 올랐지만 마지막 해에 3골을 추가하는데 그쳤다. 300게임 출장 달성후에도 대망의 100골에 이르기 위해 남은 7경기에 모두 나갔으나 결국 골을 뽑는데는 실패했다. 10년간 91% 출장과 3.1게임 당 1골을 기록한 것.

차범근을 제외한 외국선수 최다득점은 보루시아 MG에서 은퇴한 알란 시몬센(덴마크)의 76골. 차범근은 이미 85∼86시즌에 이 기록을 깨뜨렸다.

/유석근 편집위원 s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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