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고용주 작성 "고용변동 신고서" 외국인 노동자 "노예문서" 전락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고용주 작성 "고용변동 신고서" 외국인 노동자 "노예문서" 전락

입력
2004.04.29 00:00
0 0

경기 고양시의 한 공장에서 4년째 일하고 있는 방글라데시인 H(28)씨는 4개월치 월급을 못 받아 직장을 옮기려 해도 옮길 수가 없다. 고용주가 '고용변동신고서'를 작성해줘야 재취업을 할 수 있는데 사장 A씨가 응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신고서를 작성해주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지만, H씨는 신고서 없이 직장을 그만두면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H씨는 "사장은 '그냥 일하든지, 불법체류자가 되든지 알아서 하라'고 오히려 협박까지 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해 11월 외국인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 외국인 노동자가 직장을 옮길 때 의무적으로 고용안정센터에 제출해야 하는 고용주의 고용변동신고서가 '현대판 노예문서'로 전락하고 있다. 고용주 동의가 없으면 외국인 노동자는 고용안정센터에 취업신청을 할 수 없고, 센터를 거치지 않은 채 다른 직장을 구하면 불법체류자 신세가 돼 당국의 추적을 받는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일부 고용주들이 이 같은 점을 악용,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거나 임금을 고의 체불해도 감내해야 하는 형편이다.

이직 어려운 외국인 노동자

경기 군포시의 한 가구공장에서 각각 월 100만원을 받고 일하던 방글라데시인 C(27)씨 부부는 지난달 월급을 40만원 밖에 받지 못했다. 회사측이 "일감이 줄었다"며 일방적으로 일당제로 고용계약을 변경했기 때문. 직장을 옮기려 했지만 고용변동신고서를 써주지 않아 지금도 업주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열악한 작업환경 탓에 병을 얻었는데도 '계속 근무'를 강요받는 경우도 있다. 방글라데시인 S(46)씨는 후두기관염에 걸려 먼지가 심한 제재소에서 더 이상 근무할 수 없는데도 사장이 "숙련공이라 내보낼 수 없다"며 신고서 작성을 거부해 병만 키우고 있다. S씨는 고용안정센터에 사정을 호소했지만 "마땅한 규정이 없다"는 무성의한 대답만 들었다. 파키스탄인 L(33)씨는 고용주의 핍박을 견디다 못해 직장을 그만두면서 불법체류자 신세가 돼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다.

고용주에게만 유리한 법 조항

노동부 관계자는 "고용주가 고용변동신고서 작성을 거부해도 해당 노동자가 고용안정센터에 신고하면 직권조사를 거쳐 중재를 하고 있어 별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인천지역의 한 고용안정센터에 따르면 올들어 신고서 작성 거부행위에 대해 100여건의 직권조사 의뢰가 접수됐으나 실제 조사가 이뤄진 것은 단 4건 뿐이다. 센터측은 "체임기간이 2개월이 지나야 조사대상이 되는 등 조사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성희롱 등 가혹행위는 아예 항목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인권센터 이상재 팀장은 "8월 전면적인 고용허가제 실시에 앞서 외국인고용법의 독소조항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