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훌륭한 통치자는 누구냐? 장자는 그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있는지조차 모르게 만드는 통치자라 했습니다."김수환 추기경이 28일 '21세기 지도자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서울 중구 장충동 소피텔 앰버서더호텔에서 열린 동국대 불교경영자 최고위과정 초청 특강에서 김 추기경은 "우리나라 정치는 불행하게도 그런 지도자를 가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거나 근심을 안겨주는 부담스런 존재가 돼왔던 것이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가톨릭 지도자로서는 이례적으로 불교계 행사에 강사로 기꺼이 참석한 김 추기경은 "새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큰 덕목으로 생김새, 생각이 다른 사람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것"을 꼽은 뒤 "새로운 정치 지도자들은 독선과 배척이 아니라, 사랑과 진리에 기반을 두고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 고 말했다. 또 지역간, 세대간, 계층간 갈등도 타인을 인정하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비로소 해소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미움과 편가르기가 수반된다면 민주주의와 정의도 도리어 우리를 억압하고, 이 사회를 비인간화시킬 뿐"이라고 역설했다.
"과거 정권의 말로가 대체로 불행했던 것은 리더십이 국리민복보다 자신들의 영달이라는 욕망에서 출발했기 때문"으로 분석한 김 추기경은 "새로운 지도자는 독선과 배척이 아니라 사랑과 진리에 기반을 두고 국민에게 봉사하며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진정한 카리스마를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추기경은 요즘은 신자들도 권위적인 성직자 대신 친절하고 격식 없는 성직자를 좋아한다며 "지도자의 권위는 자신을 비우고 낮추는 봉사에서 나오고, 그래야만 구성원들이 그를 믿고 따르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17대 총선은 새로운 정치를 열망하는 국민 바람 속에 치러졌고, 국민을 대표해 국가를 이끌 훌륭한 분들이 선출됐다"며 "부디 이 분들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국가와 국민을 진정 위하는 선량들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특강이 끝난 뒤 참가자들과 가진 일문일답에서 김 추기경은 "나는 약간 보수주의자"라며 "그러나 굳어버린 보수가 아니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말한 것처럼, 잘못을 고쳐나가는 보수"라고 자신을 규정했다. 그러면서 "나는 보수주의자인 만큼 자유민주주의를 기틀로 한 통일을 원하며 이를 희생시키는 통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추기경은 또 이라크 전쟁과 관련, "테러는 잘못된 것이지만 미국이 테러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려 함으로써 보복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며 "부시 대통령이 평화적인 방법을 사용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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