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귀마개, 부채, 선블록크림, 선글라스, 방한복, 장화, 감기약…. 한나라당 천막당사에서 살아 남기 위한 필수품이다.지난달 23일 취임한 박근혜 대표가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자"며 서울 여의도 옛 중소기업전시장 부지 500여평을 임대해 마련한 천막당사가 문을 연 지 한달여가 지났다. 천막당사에서 극심한 일교차와 소음, 황사바람을 견디려면 "남극탐험대보다 더 많은 장비와 체력이 필요하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올 정도로 안팎의 환경은 열악하다.
그러나 천막당사에 상주하는 사무처 직원 70여 명에게 이에 대한 불평은 금기다. 이들은 "한나라당이 재탄생하기 위한 당연한 고통"이라며 의연해한다. "천막당사로 나앉은 덕분에 그래도 121석이나 건졌다"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조금만 더 캐물으면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침 저녁엔 추워서 석유난로 옆에 붙어 있고 낮엔 땀으로 와이셔츠가 흥건히 젖으니 감기가 떨어지겠습니까.""점심시간만 돼도 먼지로 콧구멍이 새까매질 정도이니 오래 살려면 입을 열지 말아아죠." "비가 오면 감전될까봐 고무장화 생각이 간절해요." "산업재해 항목에 '컨테이너 증후군'도 있는지 알아봐 줘요."
기자실도 진풍경이 벌어지긴 마찬가지다. 천막의 온실효과에다 취재 열기, 100여대의 노트북이 내뿜는 열기가 더해져 50여평 남짓한 기자실은 찜질 방이나 다름 없다. 마감시간이 가까워 오면 참다 못해 너도나도 양복 바지를 걷어 올린다. 아무리 더워도 마스크는 벗지 않는다. 하루 두번씩 걸레질을 해도 새까맣게 내려앉는 황사먼지 때문이다.
하지만 천막당사를 지키며 '환골탈태의 고통'을 온전히 겪는 것은 말단 당직자와 출입기자들뿐이다. 박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매일 오전 회의 때 잠깐 들렀다 이내 사라진다. 당직자들에게 "다들 어디 갔습니까"라고 물으면 "일정이 따로 있으셔서…."라고 말끝을 흐린다. 이어 "일부러 피하시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라고 손을 내저으면서도 "그래도 함께 땀도 흘리고 먼지도 닦고 하는 게 정도가 아닐지…" 한다. 특히 당선자들에 대한 불만은 폭발 일보직전이다. "선거 전엔 뻔질나게 드나들던 사람들이 한 두번 와 보고 '이런 데서 어떻게 일하나'하고 내뺍디다. 누구 고생 덕분에 배지 단 줄도 모르고…."
한나라당은 며칠 전 24일까지였던 부지 계약을 한 달 연장했다. "선거용 쇼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섭니까"라고 물었다.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열린우리당이 폐공판장에 있는 한 우리도 최소 폐공장 건물 이하급으로 가야 하는데 마땅한 데가 없어서…."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