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역 참사를 계기로 곤경에 처한 북한동포를 돕자는 운동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측은지심의 발로라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지난 시기 적대적 남북관계를 떠올리면 놀랍고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얼마 전만 해도 대북 현금 지원을 반대하며 금강산 관광 보조금을 삭감했던 한나라당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고 북한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던 언론사들도 국민을 상대로 성금 모금에 앞장서고 있다. 심지어 반핵반김을 내세우던 보수단체들도 동참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대북 지원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이번에 팔을 걷어붙이고 북을 도우려고 나선 것은 대북 인식이 하루 아침에 바뀌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비극적 재난에 대한 인도적 긴급구호인 만큼 조건 없이 지원해야 한다는 데 대해 국제사회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천 지원에 전 국민이 뜻을 같이하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번 긴급구호가 민족화해에 기여하고 향후 차분하고 안정적인 대북 지원으로 진전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우선 지원 과정에서 행여라도 불상사가 생겨 하루 아침에 남북 적대감이 재연되는 경우를 막아야 한다. 가까운 과거만 돌이켜 봐도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이 돌발상황에 의해 오히려 민족 대결을 부추기는 결과로 변해버린 사례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1995년 대북 쌀 지원 과정에서 발생한 인공기 게양 사건은 일부 언론의 부풀리기에 의해 남북 간 갈등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실 북한 영해에 들어가면서 태극기와 인공기 모두 게양하지 않기로 한 사전 합의를 어긴 것은 남이나 북 모두 마찬가지였다. 태극기 내리는 것을 잊고 들어간 남측도 실수였고 그렇다고 태극기를 내리고 인공기를 게양케 한 북측도 문제였다.
어찌 보면 사소한 이 사건은 '쌀 주고 뺨 맞는다'는 식의 감정적 대응에 의해 대북 적대감을 키우는 데 활용되었다. 84년 북측의 수재물자 지원 과정에서도 일부 언론은 선의의 동포애를 지적하기보다 수재물자의 질을 트집잡거나 전달하러 온 북측 인사의 행색을 비아냥거리는 등 적대감을 유지하는 데 신경을 더 썼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분위기에 밀려 전국민적인 대북 지원이 강조되고 있지만 예상치 못한 불상사라도 생겨 대북 적대의식 고취에 이용되면 용천 지원은 한 순간에 민족애에서 적대감으로 반전될 수 있다. 이러한 돌발상황을 막기 위해 남북 모두 사소한 일이라도 시비거리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문제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악의적으로 활용하는 구태의연한 행동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용천 지원을 계기로 대북 경제 지원에 대해 좀더 전향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아직 우리 사회 일각에는 북한 지원이 김정일 정권의 생명연장에 활용될 뿐이라면서 군량미 전용 의혹 등을 제기하며 퍼주기라고 비난하고 분배의 투명성과 상호주의적 대가를 요구하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용천 지원이 재난 발생에 대한 긴급구호의 성격이기 때문에 보수진영이 동참한 것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북한은 '만성적 상시 재난' 상황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사고로 인한 재난은 도울 수 있지만 식량난과 경제난은 도울 수 없다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을 당하고 식량이 부족해 굶어 죽어가는 상황은 그 자체로 거대한 재난상황이고 이에 대한 지원은 본질적으로 긴급구호의 성격을 갖는 것이다.
이번 용천 참사가 아무 이견 없이 적극 도와야 할 일이라면 매년 일정량의 식량과 비료를 지원하는 일도, 남북 경협을 통해 경제 지원에 나서는 일도, 결국은 북한 경제를 회생시키는 일도 그 어떤 조건이나 전제 없이 도와야 할 일인 것이다. 용천 참사를 계기로 민족화해가 증진되고 상호신뢰가 쌓인다면 비극 속에 피어난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될 것이다. 도울 때는 그냥 도울 일이다.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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