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첨단 기업의 기술 수출을 적극 비호해온 미국의 통상 외교가 이번에는 중국의 만리장성을 무너뜨렸다.최근 우리나라가 무선인터넷 플랫폼의 '위피'(WIPI) 단일화에 실패한데 이어, 중국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차세대 이동통신 표준 단일화 작업도 미국의 통상압력에 의해 무산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이번에도 퀄컴의 손을 들어줬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중국과 미국은 지난 주 양국간 무역 현안에 대한 협약을 맺고, 자국 이동통신시장에 대한 중국 정부의 '중립성'을 강조하는 조치에 합의했다.
이번 협약으로 중국 정부는 앞으로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동통신업체들이 각자의 이익에 따라 자유롭게 기술 표준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중국 정부는 또 이동통신 업체와 기술 표준을 제공한 기업의 로열티 협상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중국은 이번 합의를 계기로 차세대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토종 이통기술(TD-SCDMA)을 강요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중국 3세대 이동통신 시장에서는 퀄컴의 'CDMA2000 1x'와 유럽식 WCDMA인 'UTMS', 그리고 TD-SCDMA가 서로 경쟁해야한다.
현지업계는 이를 두고 퀄컴 등 3세대 이통 기술에 대한 특허권을 보유한 미국 기업의 입장이 십분 반영된 결과라고 풀이했다. 또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돼 중국 이통업체들의 로열티 협상력도 약해질 전망이다.
국내 업계는 "TD-SCDMA의 좌초 과정이 우리나라 무선인터넷 표준 '위피'(WIPI)의 운명과 너무나 흡사하다"고 지적했다. 원천 기술 확보,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 로열티 절감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국가 단일 표준'으로 출발했으나 미국과의 통상협상 과정에서 여러 대체 기술 중 하나로 격하됐다는 것이다. 수혜자가 미국 퀄컴이라는 점도 일치한다.
중국 정부는 우리나라의 WCDMA격에 해당하는 3세대 이통서비스 표준으로 TD-SCDMA라는 독자 기술 개발에 적극 투자해왔다. 차세대 이동통신 사업에서만큼은 토종 기술을 사용해 연간 1조원에 이르는 로열티를 아끼고, 이통 서비스 업체 및 휴대폰 단말기 업체들의 비용을 줄여 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그러나 "이는 우수한 외국 이동통신 기술의 진출을 막는 불합리한 조처이고 세계무역기구(WTO)의 정신에도 어긋난다"며 중국 정부의 정책 철회를 종용해왔다. 기술의 선택은 시장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논리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