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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Review "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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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Review "해일"

입력
2004.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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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진흙으로 쌓은 얕은 언덕 너머로 두 인민군이 보였다. 뜨거운 입김이 느껴질 듯한 가까운 거리에서 배우들은 한숨을 내쉬거나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배우들이 기댄 언덕 위로는 갈대가 바람에 흔들렸다. 막이 내릴 때까지 두 시간 동안 두 배우는 쇠사슬에 발이 묶인 채 참호에 갇혀 있었다. 등·퇴장도 없이, 어떤 조연 배우의 도움도 없이, 두 사람은 관객의 수백 개의 눈동자 아래 무방비 상태로 연극을 끌어가야 했다.'흉가에 볕들어라'의 작가 이해제가 쓰고 연출한 '해일'(행복한 극장·5월2일까지)은 '갇힌 두 사람'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작품이다. 두 시간 내내 관객을 긴장시킬 수 있는 마땅한 장치가 따로 없다. 대사와 연기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빼어난 언어 구사와 상황 연출로 또래 작가군 가운데 몇 걸음 앞서 가 있는 이해제는 '해일'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발휘한다.

퇴각하는 인민군이 총알받이로 잡아둔 두 병사가 있다.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채삼꾼(오달수)은 동원된 병사이고, 월북한 동경유학파 화가(유지태)는 인민을 위해 총알받이를 자처한 병사다. 계급도 사상도 다른 두 병사가 맞닥뜨린 운명을 작가는 해일에 비유한다.

재치 있게 순간 순간을 장악해가는 노련한 오달수의 연기와 고지식할 정도로 무섭게 파고드는 유지태의 연기는 잘 어울렸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함께 했던 사이기도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줄 수 있는 좋은 짝으로 보였다. '쿵' 소리가 울릴 정도로 언덕에 머리를 찧으며 병사의 절망을 연기하는 유지태는 안타까움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온몸을 던졌다.

그러나 극은 객석을 바짝 죄어가지는 못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아름다운 대사에 탐닉하는 부조화가 눈에 띄었다. 한가지 상황만으로 관객을 한국전쟁의 복판으로 데려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섬세한 조명이 연극의 빈 곳을 채우지만 부족하다. 작가와 배우 모두 재능과 열정으로 충만하지만, 달리는 말엔 채찍을 휘둘러야 하는 법. 언제나 그렇듯, 잠들기 전 우리는 몇 십리를 더 가야 한다.

/이종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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