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씨는 남편의 반대를 이겨가며 늦깎이로 대학에 등록했다. 노동일을 하는 L씨는 자녀들 몰래 동네 시민학교에서 한글과 한자를 배우고 있다. 모 방송국 프로듀서 K씨는 지금 직장 동료 몰래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공부 권하는 사회이다. 그러나 실상은 숨어서 공부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부모 노릇과 직장 일을 병행하면서 교육을 받는 일은 험난하기 이를 데 없다. 말로는 지식기반사회라고 하면서도 직장과 학업을 동시에 병행하려는 사람들에 대해 무척이나 냉담한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최근 4조 2교대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있는 유한킴벌리의 사례는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지만 이것에 관해서도 대부분의 기업들은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아직 지식경제로 갈 준비가 안 되어 있는 모양이다.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려는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것은 기업만이 아니다. 오히려 교육체제의 책임이 더 크다. 우리나라 25세 이상 성인인구 가운데 중졸 이하 학력을 가진 인구는 전체의 36.3%로 숫자로 따지면 900만 명 가량이 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보고서는 우리나라 기초문해(文解) 경쟁력이 29개 국가 중 12위에 머물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적령기를 넘어선 저학력층이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중등학교는 거의 없다. 가난의 굴레 때문에 무식하게 되었고, 다시 그 무식함이 결과한 가난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이 끊어지지 않는다.
최근 각 대학들이 특별전형을 실시하기 시작하면서 뒤늦게 학부에 입학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고 있다. 사이버 대학생의 대부분이 30∼40대이다. 학점은행제 등 새로운 학위 취득 방식이 생긴 지도 오래되었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흐름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저 못 배워서 속 쓰린 사람들의 한풀이려니 여긴다.
1,000개가 넘는 특수대학원들의 부실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전임교수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등록금의 80%는 엉뚱한 곳으로 새 나가고 있다. 하루 종일 직장에 시달리면서도 힘써 대학원을 찾는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씁쓸한 실망뿐이다.
결국 많은 이들이 학위보다 실리를 찾아 학원에 등록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학원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이미지는 부정적이기 이를 데 없다. 직업과 교육을 병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맞춤형 교육서비스는 교육전문가들에게조차 낯선 것일 뿐이다.
학령기를 지난 성인들을 위한 교육을 사람들은 평생교육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평생교육을 종합적으로 기획하고 지원하는 주체가 없다. 개별 정책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갈갈이 찢겨서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예산도 변변치 않다. 반면 끝이 뻔한 EBS 수능 방송 지원에는 수천억 원을 쏟아 붓는다.
발상을 전환할 때이다. 1년에 2,000억씩 5년만 공적 평생교육에 투자할 수 있다면 국민의 학습문화가 달라진다. 여러 가지 노동과 경제의 난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 정규 학교보다 훨씬 생산적인 평생교육 인프라가 구축될 수 있다. 공교육의 부실을 메우고도 남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다. 대학 입시 과열과 사교육 문제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이 사업의 비전과 전략을 개발·수행하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그로 하여금 학습국가를 향한 구체적 비전과 로드맵(일정표)을 구상하게 할 수 있다. 사분오열 찢어져 있는 개별 제도와 정책들을 하나의 시스템 안으로 정리해 내는 한편 부실한 성인 재교육 기관들을 성장시키는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이것을 시작으로 능력과 경력이 중단 없이 축적되고 학벌과 학력 차별이 극복되는 진정한 학습사회를 만들 수 있다. 직장에서 당당하게 공부하고, 그에 합당한 지원을 받는 학습사회를 건설할 시간이다. 학습사회는 우리에게 삶의 질로 보답할 것이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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