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끝난 백운기 우수고교축구대회서 백암종고의 우승을 지켜본 많은 축구인들은 "이제 한국 학원축구의 판도가 본격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백암종고는 바로 유럽의 선진클럽형 축구를 모델로 한 용인시 축구센터(대표이사 이우덕·총감독 허정무 전 국가대표 감독) 소속 선수들로 구성된 팀. 말하자면 한국축구는 '축구영재' 양성을 목표로 한 유소년클럽 출신들이 주축을 이룰 것이라는 게 축구인들의 견해다. 특히 이 축구센터 소속 원삼중은 지난달 춘계 전국 축구연맹전에서 우승하는 등 지난해 하반기부터 각종 대회를 휩쓸고 있다. 이들 중·고팀은 창단 3년째에 접어든 신생 팀들이라는 점에서 가히 클럽축구의 돌풍이라 할 만하다. 그 진원지인 경기 용인시 축구센터(FC)를 찾았다.
입이 딱 벌이지는 최고급 시설
23일 용인시 FC에 첫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산골짜기에 별천지가 펼쳐진 듯한 인상을 받았다. 웅장한 4층짜리 건물 앞에 마련된 천연 및 인조 잔디구장에서는 백암중 및 원삼중, 백암종고와 신갈고 등 4개 중·고 축구부원들이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고교 때까지 축구선수로 활약했던 이우현 용인시의회 의장이 2001년 6월 허정무 전 국가대교 감독과 만나 유소년을 위한 축구메카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해 이뤄낸 작품이다. 7월말 축구장 5개면이 모두 완공되는 이 센터는 용인시가 3년동안 320억원의 자본을 댔고, 허 전 감독이 유럽프로팀 생활에서 익힌 노하우를 제공했다.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 못지않다"는 용인시 FC관계자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운동장의 잔디상태는 말할 것도 없이 건물 안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4인용 숙소를 비롯, 체력단련실, 물리치료실, PC방, 탁구장, 휴게실, 도서관은 물론이고 비디오 분석이 가능한 시설도 갖춰져 있었다. 입소생 193명을 위해 16명의 코칭스태프가 있었고, 골키퍼 전담코치, 물리치료사도 두고 있었다.
모토는 즐기는 축구
용인시 FC의 자랑은 코치들도 수준급이지만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축구를 하도록 한다는 것. 때문에 학원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인 선후배간의 구타는 엄격히 금지된다. 선수들은 오전에 학교수업을 들어야만 오후 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 부평고에서 2년6개월간 선수들을 지도했다는 FC 소속 김봉길 백암종고 감독은 "처음 1년간은 구타 없이 학생들을 지도하려니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새로운 전통을 세워야 한다는 축구센터의 지도 방침에 따라 개별 미팅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동기를 유발, 이제는 완전히 정착됐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잔디 위에서 연습을 하면 학생들의 기술 습득 정도가 맨땅에서 할 때에 비해 두 배는 빠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고교 1년때 입소했다는 김진성(18·백암종고3년)은 "중학교 때는 선배들의 구타로 괴로운 경우가 많았지만 그런 걱정은 없다. 하지만 이 곳은 동료들간 포지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야간이나 아침에 개별운동을 하는 등 스스로 알아서 열심히 하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말했다. 박정혜(백암종고 2년)는 "중학교 때는 한방에서 30여명씩 함께 숙식했는데, 이제는 4명씩 방을 쓰고 내 책상도 있어 너무 좋다"며 "특히 잔디 위에서 경기를 하니까 의욕이 더욱 생기고 맨땅과는 달리 부상 걱정없이 태클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클럽축구의 경쟁력은 우수한 시설과 지도방식의 결합이 낳은 합작품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용인=박진용기자 hub@hk.co.kr
■ 국내 유소년 클럽은
유럽식 유소년 축구클럽이 국내에 선을 보인 것은 1990년대 중반께. 역사가 짧아 이 곳에서 배출된 스타는 아직 없다. 용인시 축구센터 소속 정인환 백승민(이상 백암종고3년)이 19세 이하 청소년 대표, 차범근 축구교실의 김준배(여의도고 3년)가 17세 이하 대표로 각각 발탁된 정도다. 하지만 축구를 즐기면서 커온 클럽 소속 선수들이 머지않아 한국축구의 동량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현재 국내의 유소년 클럽들은 크게 일반 학생과 엘리트 선수 등 두 종류로 구분해 운영하고 있다.
차범근 축구교실(02-795-8049) 1995년 창립됐다. 축구를 좋아하는 누구나 전문 코치로부터 강습을 받을 수 있다. 잘하는 사람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테스트를 거쳐 선수가 될 수 도 있다. 강습은 서울 동부이촌동 한강둔치 거북선 나루터 부근에 있는 3개면 인조 잔디구장에서 매일 이뤄진다. 수업이 끝나고 방과후에 하는 것이 원칙이며 합숙도 없다. 강습료도 저렴한 편. 한 달에 매주 토요일 한시간씩 지도를 받을 경우 4만원, 화·목요일은 6만원, 월·수·금은 7만원, 매일은 10만원이다.
포천 김희태 축구센터(031-536-6288) 포천시 일동면에 자리한 곳으로 엘리트 선수들을 위해 2002년 창립됐다. 용인시 축구센터(031―322―9600)와 비슷한 형태이지만 비용은 조금 더 싸다. 용인시 축구센터 입소생은 월 110만원을 내지만 이 곳은 중학생 80만원, 고교생 100만원이다. 현재 포천 일동중과 포천종고 축구부원 69명이 코치 7명의 지도를 받고 있다. 오후 수업까지 마친 뒤 하루 2시간씩 운동한다. /박진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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