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무진장 지역이라고 불리는 장수군 장수읍내 노하(路下) 마을에는 낙엽활엽수들로 이루어진 '노하숲'이 있다. 4월 중순 이 곳을 찾았다. 여느 곳 같으면 이미 새싹이 돋아 나무에 따라서는 잎이 제법 넓어진 때이나 이곳에 오는 봄은 게으르기 짝이 없다.주로 느티나무가 많고 팽나무도 더러 눈에 띄며 200그루는 족히 넘는 나무들로 이루어진 이 숲은 키가 20m가 훨씬 넘고 둘레가 몇 아름이나 되는 나무도 많아 오래된 숲임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숲은 장수읍 외곽 한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으며 주민들이 자주 찾는 소중한 휴식처이자 많은 전설과 역사를 간직한 숲이다. 장수는 논개가 태어난 곳으로 논개사당 가까이에 있는 노하숲에까지 최경회와의 애틋한 사랑과 구국충절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장수(長水)라는 지명은 금강과 섬진강의 긴 물줄기가 시작된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금강(錦江)은 이성계의 조선개국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뜬봉샘'(飛鳳泉)'에서 발원하여 장수읍을 지나는 장수천을 따라 흐르다 비단처럼 곱다는 금강 큰 물길로 들어가게 된다. 노하숲 부근에는 이 장수천이 흐르고 있어 숲의 아름다움에다 한결 운치를 더해주는 데 노하숲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장수천도 한 몫을 했다. 부정을 타지 않을 정도로 워낙 맑은 물이 흘렀던 때문이다.
노하숲은 고려말, 황희 정승의 아버지가 장수현감일 때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당시 황희 정승의 어머니는 동헌에서 300m가량 떨어진 단봉산 자락에서 훌륭한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치성을 드렸다고 하는데 그 일대를 가리켜 단봉하전(丹鳳下田), 즉 봉황이 내려오는 형국의 땅이라고 하였다 한다. 황희 정승의 어머니가 치성을 드리며 그 땅을 보호하는 숲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심은 것이 지금의 노하숲이 됐다. 이는 풍수지리적으로 단봉산에서 내려온 봉황이 알을 잘 품고 새끼를 잘 기르도록 기원한 것일 게다.
오늘날 노하숲, 노하리라고 부르고 있으나 본래 '봉강(鳳降)숲', '봉강마을'이었다고 한다. 노하마을 뒷산의 형세가 봉황과 같은데다 붉은 빛의 바위들이 드러나 있어 단봉산(丹鳳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또한 본디 이 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단봉산에서 봉황이 살며시 내려와서 앉아있는 형국이라고 하여 '봉강마을'이라 하였고 단봉산의 반대편에서 마을을 감싸고 있는 이 숲 역시 '봉강숲'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노하숲'이라는 이름에도 노하마을과 같이 '路下'라는 한자 이름이 붙어 있다. 이와 관련한 기록을 보면 노하마을이 풍수적으로 '백로(白鷺) 즉, 해오라기가 날아와 앉아 있는 형국'이어서 노하(鷺下)라고 하였다고 하나 일제시대부터 길 밑에 있는 숲과 마을이라는 의미인 '路下'로 바뀌어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현재의 이름대로 노하숲 바로 옆에는 잘 포장된 왕복 4차선의 국도 19호선 장수우회도로가 지나고 있다. 어쨌든 이 지역은 봉황과 백로 설화가 얽혀있는 곳이다.
이 숲은 국난을 지킨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였다. 숲이 만들어지고 오랜 세월이 지난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군들이 남원을 거쳐 장수까지 침입한 것을 의병들이 노하숲을 은신처로 하여 물리쳤다고 하여 노하숲을 '의병숲'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노하숲은 2002년에 생명의 숲, 유한킴벌리와 산림청이 주는 '아름다운 마을숲'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는데 금년부터는 주민들에게 더 큰 휴식공간을 제공하며 전국적인 명소로 잘 가꾸고 보전하여 후세에 물려주자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정용호
국립산림과학원 박사
yhjng@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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