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의 마지막 향연은 산 위에서 벌어진다. 철쭉이다. 이달 말부터 6월 초까지 볼 수 있다. 산꼭대기에 무리 지어 핀 야생 철쭉은,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개량종 철쭉과 달리, 수줍은 듯 은근한 색깔과 자태를 뽐낸다. 붉은 바다를 배경으로 가족 기념사진을 찍어보자. 땀과 색깔이 어우러진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철쭉 명산을 돌아본다.
◎바래봉
전북 남원시 운봉면
지리산 연봉의 북쪽 끝에 있는 바래봉. 스님의 밥그릇인 바리때를 엎어놓은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정상 부근이 초원처럼 넓게 펼쳐져 있는데 이 곳에서 철쭉이 꽃잎을 연다. 산행의 출발점은 운봉읍에서 1.5㎞ 떨어져 있는 용산마을. 목장 뒤로 나 있는 임도를 따라 오르기 때문에 그리 힘들지 않다.
임도가 끝나는 정상 아래의 언덕부터 철쭉이 무리 지어 피어있다. 가장 많이 피어 있는 곳은 정상에서 약 1.5㎞ 떨어져 있는 팔랑치. 군데군데 붉은 그릇을 엎어놓은 듯하다. 바래봉은 지리산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 정상에 서면 천왕봉부터 노고단에 이르는 주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하산길은 팔랑치를 거쳐 임도를 따라 운봉읍으로 내려오는 길과 세걸산을 거쳐 정령치로 가는 종주코스 등이 있다. 지리산 북부사무소 (063)625-8911.
◎황매산
경남 합천군 가회면, 대병면
합천군의 군립공원이지만 별다른 특색이 없어 산행 서적이나 관광지도에서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무명인 산이었다.
그러나 수년전 철쭉의 아름다움이 알려지면서 봄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산이 됐다. 게다가 인근에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촬영 세트가 있어 연일 관광객이 찾는다.
하봉, 중봉, 상봉의 세 개의 봉우리가 있다. 합천호가 생긴 이후 세 봉우리가 물에 비쳐 장관을 이룬다고 해 수중매라 부르기도 한다. 등산로가 난 지 20년이 채 안돼 아직도 여우나 살쾡이 등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산행을 하려면 방어무기가 될만한 도구를 챙겨야 한다는 게 주민들의 조언이다.
이 곳 사람들이 '개꽃'이라고 부르는 철쭉은 모산재에서 정상에 오르는 목장지대부터 시작해 능선을 타고 상삼봉, 작은골 정상까지 이어진다. 특히 정상 아래에 있는 황매평전의 철쭉 자생지가 넓다. 산행 소요시간은 코스에 따라 1시간∼4시간30분으로 다양한데 험한 구간이 많다. 합천군청 관광개발사업소 (055)930-3751.
◎제암산
전남 장흥군 장흥읍
장흥군과 보성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 해발 807m로 그리 높지 않지만 웅장한 골짜기와 굵은 기암이 연이어져 있는 남성적인 산이다. 인근 산들이 이곳을 향해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고 해서 정상의 바위가 제암이고 산 이름이 제암산도 됐다.
철쭉 군락지는 제암산이 아니라 제암산과 사자산이 만나는 곳이다. 3만여평의 산등성이가 온통 붉은 색으로 뒤덮인다. 소나무 몇 그루를 제외하고는 모두 철쭉이다. 산행시간은 코스에 따라 다른데 2시간30분∼4시간 정도다. 제암산과 사자산 정상을 모두 종주하는 코스는 7시간 걸린다. 인근 보성의 일림산도 이제 알려지기 시작한 철쭉 명산. 제암산과 능선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장흥은 인근 강진이나 해남 못지 않은 역사 답사지다. 국보 제117호인 철조비로사나불, 보물 제44호인 삼층석탑석등 등 불교미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보림사, 천관산의 아름다운 산세와 어우러진 천관사 등이 함께 둘러볼 만한 곳이다. 장흥군청 문화공보과 (061)860-0223.
◎한라산
제주
5월 중순이면 만개한 철쭉을 볼 수 있다. 산은 남쪽에 있지만 고도가 높아 약간 늦게 핀다. 철쭉군락지로는 어리목-윗세오름, 영실-윗세오름, 성판악-백록담, 백록담-탐라계곡 구간이 유명하다. 그러나 윗세오름∼백록담 구간은 자연휴식년제로 입산이 통제되고 있다.
보통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 성판악에서 시작해 진달래대피소를 거쳐 백록담에 오른 뒤 북벽-왕관능-용진각대피소-적십자대피소를 거쳐 관음사 입구로 하산한다. 8시간. 등산 경험이 없는 초보자나 노약자는 전문 산악인과 동행하는 게 좋다. 한라산관리사무소 (064)742-3084
◎태백산
강원 태백시
태백산은 연중 아름답다. 가장 아름다운 때는 설화가 장관을 이루는 한겨울이고 철쭉이 피는 봄이 두번째다. 6월초까지 철쭉을 볼 수 있다. 1,500m가 넘는 산이지만 등산은 어렵지 않다. 태백시의 해발 고도가 800여m여서 실제로 오르는 높이는 700여m에 불과하다.
태백산에 오르는 코스는 크게 세 가지. 유일사 코스, 백단사 코스, 당골 코스 등이다. 유일사로 올라 정상과 문수봉을 둘러보고 당골광장으로 내려오는 길이 일반적이다. 약 11㎞로, 5∼6시간이면 족하다.
절벽 아래 깊은 계곡에 터를 잡은 유일사, 9부 능선에 지어진 망경사,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 단종비각 등 산 곳곳에 볼 것이 많다. 태백산 정상인 장군봉과 능선으로 이어진 문수봉에 꼭 들를 것. 문수봉은 커다란 바위 덩어리로 덮여 있는 봉우리이다. 사람들이 돌을 쪼아 탑을 쌓아놓았다. 태백산도립공원 관리사무소 (033)550-2741.
/권오현기자 koh@hk.co.kr
■철쭉인지… 영산홍인지…
철쭉 시즌이지만 종종 진달래나 영산홍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더구나 셋은 모두 진달래과의 낙엽관목이다.
우선 진달래와 철쭉의 구분은 쉽다. 진달래는 잎이 피기 전에 꽃부터 피고, 철쭉은 잎이 어느 정도 자란 뒤에 꽃이 핀다. 나무에 꽃만 달려 있으면 진달래, 잎과 꽃이 함께 있으면 철쭉이다.
그러나 흔히 '연산홍'으로 잘못 부르는 영산홍(映山紅)을 가려내기란 쉽지않다. 주로 일본에서 개량돼 보급된 이 나무는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고 교과서에 나와 있을 정도이다. 모양은 철쭉과 거의 같다. 갸름한 좁은 잎사귀에 진달래처럼 생긴 꽃이 피는 작은 나무가 산에서 자라고 있다면 철쭉, 정원에 심어져 있고 유난히 색이 진하면 영산홍으로 짐작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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